회정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문신(文信)의 법을 이은 후 경전의 연구와 논리적 분석과 증명에 능했던 승려.
이칭
  • 이칭선림종주(禪林宗主)
  • 설봉(雪峰)
  • 윤중(允中)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738년(영조 14) 6월 8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678년(숙종 4)
  • 출생지전라남도 영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위석 (전 경북대학교, 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설봉대사비 미디어 정보

설봉대사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문신(文信)의 법을 이은 후 경전의 연구와 논리적 분석과 증명에 능했던 승려.

내용

성은 조씨(曺氏). 자는 윤중(允中), 호는 설봉(雪峰). 전라남도 영암 출신. 어머니 김씨는 살생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나 자기나 차별을 두지 않는 인자한 성품이었다. 신인(神人)이 나타나 명주(明珠) 한 개를 주는 태몽이 있었다.

9세 때 달마산(達磨山) 희명장로(熙明長老)의 권유로 입산하였고, 16세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그 뒤 문신(文信)에게 경론(經論)을 배우고 그 법(法)을 이었다. 여러 경전을 연구하여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증명하는 것이 능하여 남방의 모든 승려들은 그를 선림종주(禪林宗主)라고 불렀다.

평소의 생활 가운데서도 허례허식을 배제하여 입고 있는 장삼이 남루하게 떨어져도 깁지 않았으며, 머리를 깎지 않아 더벅머리가 되기도 하였다. 검소하고 청빈하기 이를 데 없어 누더기옷과 밥그릇이 소지물의 전부였다고 한다. 만년에는 해도(海島)에 들어가 야은(野隱)이라는 초암(草庵)을 짓고 홀로 살았다.

“뜬 구름 오는 곳 없고 가는 곳 또한 자취가 없네. 고요히 바라보니 구름만 오고가고, 이제는 다만 한 허공뿐일세.”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6월 8일 입적하였다. 법을 이은 제자로 각훤(覺喧) 등 16명이 있다. 다비하여 사리 1과와 영주(靈珠) 1매를 얻어 미황사(美黃寺)에 탑을 세웠다. 김진상(金鎭商)이 찬(撰)한 비가 있다.

참고문헌

  • - 『동사열전(東師列傳)』

  • - 『대둔사지(大芚寺誌)』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