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안 ()

월저당 도안 영정
월저당 도안 영정
불교
인물
조선 후기, 편양파의 주류 계보를 잇고 화엄학을 진흥시킨 학승으로 『월저당대사집』을 저술한 승려.
이칭
월저(月渚)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8(인조 16)
사망 연도
1715(숙종 41)
출생지
평양
주요 저서
월저당대사집(月渚堂大師集)
주요 작품
월저당대사집(月渚堂大師集)
관련 사건
정축옥사(1697)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도안(道安)은 조선 후기 편양파(鞭羊派)의 주류 계보를 잇고 화엄학을 진흥시킨 학승으로 『월저당대사집(月渚堂大師集)』을 저술한 승려이다. 편양파의 적전 풍담 의심(楓潭義諶)의 제자로 화엄교학에 정통했고, 『화엄경』, 『법화경』 등 경전을 유통하는 데 힘썼다. 평생 주석하던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와 화엄 강학을 펼친 해남 대둔사(大芚寺)에 그의 비가 세워졌고 대둔사의 제3대 종사로서 화엄종주로 칭해졌다.

정의
조선 후기, 편양파의 주류 계보를 잇고 화엄학을 진흥시킨 학승으로 『월저당대사집』을 저술한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도안(道安)은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성은 유씨(劉氏)이며, 법호(法號)는 월저(月渚), 도안은 법명(法名)이다. 아버지는 유보인(劉輔仁)이고 어머니는 김씨이다.

주요 활동

도안은 9세에 천신(天信)에게 출가한 뒤 금강산에 들어가 편양파(鞭羊派)의 적전 풍담 의심(楓潭義諶, 1592∼1665)에게 배웠다. 풍담 의심으로부터 선(禪)의 밀전(密傳)을 이은 도안은 화엄학(華嚴學)과 삼교(三敎)에 두루 능통하였다.

1664년(현종 5) 묘향산에 들어간 도안은 화엄종주(華嚴宗主)로 명성을 떨쳤다. 그가 『화엄경』 원교(圓敎)의 진수를 강의할 때마다 수백 명의 청중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는 『화엄경』과 『법화경』 등의 대승 경전과 『예념왕생문(禮念往生文)』 등의 염불 서적 10여 종을 간행하고 널리 배포하였다. 또한 『화엄경』을 음석(音釋)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스승 의심의 유훈을 받들어 일을 끝마쳤다. 이 때문인지 그의 비문에는 “화엄 원교는 끝없이 넓고 경계가 없는데 도안이 『화엄경소연의초(華嚴經疏演義鈔)』와 『회현기(會玄記)』에 의거하여 한글로 장과 구절을 나누고 정각최상승문(正覺最上乘門)을 열어 대화엄종주가 되었다”라고 그를 높이 평가하는 글이 새겨졌다.

1697년(숙종 23) 정축옥사가 일어나자 도안은 무고로 구금되었다. 그러나 바로 죄가 없음이 밝혀져 왕명으로 풀려나게 된다. 이후 조정에서 그에게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의 승직(僧職)을 내렸으나 도안은 이를 사양하였다.

도안은 묘향산 진불암(眞佛庵)에서 나이 78세, 법랍(法臘) 69세로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그를 화장하여 사리(舍利) 3과를 수습한 뒤 묘향산 보현사(普賢寺)해남 대둔사(大芚寺) 및 평양에 탑을 세우고 봉안(奉安)하였다. 1716년 보현사에 비가 세워졌고, 그 뒤 대둔사에도 도안의 비가 건립되었다.

학문과 저술

도안의 법맥 계보는 청허계(淸虛系) 편양파에 속한다. 그는 선과 교에 두루 능통하였으며, 특히 화엄 강학에 뛰어나 화엄종주, 화엄대종사로 칭해졌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월저당대사집(月渚堂大師集)』 2권 2책이 있다. 그 외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를 중보(重補)하였다.

제자 및 평가

도안이 법을 전수한 제자로는 설암 추붕(雪巖秋鵬, 1651∼1706)이 대표적이다. 그의 문도(門徒)는 수백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도안은 평생을 묘향산에서 주석(駐錫)하였다. 한편 그는 대둔사의 화엄 강회에 참여하여 법석을 넘겨받았는데, 이에 “남방의 총림은 평소 스스로를 불교의 요람이라고 과신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여러 곳에서 도안의 가르침을 청하러 왔다”라고 평가받았다.

참고문헌

원전

『월저당대사집(月渚堂大師集)』
『동사열전(東師列傳)』
『대둔사지(大芚寺志)』
『한국고승비문총집』

단행본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신구문화사, 2010)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신문관, 1918)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김용태(동국대학교 교수, 지역불교 및 불교사 연구(조선시대 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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