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암집』은 1804년, 승려 경암 응윤의 시와 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조선 후기 부휴계 승려 경암 응윤의 시와 기문을 제자 팔관이 엮어서 간행한 3권의 시문집으로, 승려와 유학자 관료의 활발한 교유, 당시 학승의 유교 이해와 유불일치론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저자 경암 응윤(鏡巖應允, 1743~1804)의 본관과 속성은 여흥(驪興) 민(閔)씨이고 경상도 사족 출신이다. 3세 때 모친을 여의고 5세부터 한문을 배워서 10세 전에 경사(經史)에 능통했다고 한다.
13세 때 부친이 돌아가신 후 출가했는데 출가 후 첫 법명은 관식(慣拭)이었고 부휴계(浮休系) 추파 홍유(秋波泓宥)의 법을 이었다.
28세에 개당하고 20여 년을 강설한 후 “많은 보배가 있어도 남의 보배인데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라고 하며 환암(喚庵) 문하에서 참선 수행에 전념하여 선지(禪旨)를 얻었다고 한다.
만년에는 두류산(頭流山)에 움막을 짓고 두문불출 정진하다가 1804년 1월 13일 입적하였다.
1804년(순조 4)에 제자 팔관(八關)이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처음에 목만중(睦萬中) · 유숙지(柳肅之)의 서(序)와 목만중의 경암대사영찬(鏡巖大師影贊)이 있고, 끝에 팔관이 쓴 행장과 이재기(李在璣)의 발문이 들어있다.
권상에는 오언절구 · 칠언절구 · 고시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권중에는 편지, 권하에는 기문에 이어 부록 형식으로 잡저(雜著) · 소(疏) · 한화록문답(閑話錄問答)이 들어있다.
권상의 시는 명산 · 고찰의 풍광과 저자의 소회를 읊거나 교유 관계, 일상 및 선의 기풍을 드러낸 것 등이 있다. 이 중 「선거탄(禪居嘆)」과 「강사행(講師行)」에서는 선(禪)과 교(敎)의 수행 기풍과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권중에는 「채상국번암공(蔡相國樊巖公)」 등 유학자와 승려 등 23명에게 보낸 편지글이 들어있어 인적 관계망을 확인할 수 있다.
권하에는 4편의 서문과 「해인사백련암중창기(海印寺白蓮庵重創記)」 · 「칠불암기(七佛庵記)」 등 24편의 기문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는 9편, 소 5편, 「한화록문답」 4편이며, 이 중 「논한자설(論韓子說)」 · 「논삼교동이(論三敎同異)」는 유불 공조 및 삼교일치론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며,
「오효자전(吳孝子傳)」 · 「박열부전(朴烈婦傳)」은 유교사회에서 중시된 효 등의 덕목을 중요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벽송사답정토설(碧松社答淨土說)」은 염불을 통한 정토 왕생을 문답 형식으로 설한 글이다.
말미에는 팔관이 쓴 응윤의 행장과 목만중의 영찬(影贊), 이재기의 발문이 있다.
조선 후기 부휴계 승려 경암 응윤의 시문집으로 승속을 망라한 교유관계와 당시 학승의 유교에 대한 인식 등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