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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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설암잡저』, 『설암난고』, 『선원제전집도서과평』, 『법집별행록절요사기』, 『묘향산지』 등을 저술한 승려.
이칭
  • 설암(雪巖)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706년(숙종 3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651년(효종 2)
  • 출생지평안남도 강동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상국 (문화재관리국, 서지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설암잡저 미디어 정보

설암잡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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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설암잡저』, 『설암난고』, 『선원제전집도서과평』, 『법집별행록절요사기』, 『묘향산지』 등을 저술한 승려.

내용

선사(禪師). 대흥사(大興寺) 13대종사(大宗師) 중 제5종사이다. 성은 김씨(金氏). 호는 설암(雪巖). 평안남도 강동(江東)출신. 응소(應素)의 아들이다. 10세에 원주법흥사(法興寺)로 출가하여 종안(宗安)의 제자가 되었고, 뒤에 구이선사(九二禪師)에게서 경론(經論)을 배웠다.

여러 경론을 섭렵한 다음 도안(道安)을 찾아가 담론하였는데, 만나자마자 서로 의기가 투합하여 여러 날을 담론한 뒤 도안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았다. 그 뒤 남방(南方)의 여러 사찰을 순방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학승들이 수없이 모여들었다.

비명(碑銘)에 의하면 용모가 추하여 위의(威儀)를 갖추지 못하였으나 계행(戒行)이 청정하여 추호도 계를 범함이 없었다고 하며, 사람을 접할 때는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흥사에서 항상 화엄학(華嚴學)을 강의하던 곳을 백설당(白雪堂)이라 하였다 하며, 그 때의 『화엄강회록(華嚴講會錄)』이 대흥사에 전한다고 하나 확인할 길이 없다.

만년에 묘향산에서 수년을 은거하다가 입적하였다. 문도들이 다비(茶毘)하여 얻은 사리(舍利) 5과(顆)를 낙안(樂安 : 昇州)의 징광사(澄光寺)와 해남 대흥사에 분장(分藏)하였다. 저서로는 『설암잡저(雪巖雜著)』 3권, 『설암난고(雪巖亂藁)』 2권,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 1권, 『법집별행록절요사기(法集別行錄節要私記)』 1권, 『묘향산지(妙香山誌)』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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