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산내암자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1630년(인조 8) 극현(克玄)이 덕호(德浩)와 함께 중건하였고, 1693년(숙종 19) 이홍록(李弘錄)이 덕탄(德坦)과 더불어 중건하였으며, 1750년(영조 26) 온곡대사(溫谷大師)가 우일(宇一)과 함께 중수하였다. 그 뒤 1740년(영조 16)에 위일(位一)이, 1791년(정조 15)에 정능(定能)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응진당·향적당·요사 등이 있다. 응진당은 정면 3칸의 조그마한 전각이며, 그 옆으로 약 50년 전에 건립된 요사채가 있다. 응진당 안에는 조선 초기의 목조 16나한상(羅漢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 조각수법이 특이하다. 원래 이 나한상은 50m 상방에 위치했던 고진불암(古眞佛庵)에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강진에 살던 어부 서씨(徐氏)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서쪽나라의 배를 만났는데, 그 배 안에 16나한상이 실려 있었으므로 두륜산방(頭輪山房)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또한 1709년에 조성한 강희48년명 동종이 있었으나 폐사될 때 대흥사 부속암자인 청신암(淸神庵)으로 옮겨 봉안되었다가 지금은 대흥사 서산대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전체 높이 70㎝, 아래 지름 50㎝인 이 종은 조선 후기의 주종수법을 고찰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종을 거는 용두(龍頭)는 단룡(單龍)으로 나타냈고 종의 사방에는 4보살과 유곽(乳廓)을 표시하였다. 위쪽의 상대(上帶)에는 뾰족하게 앙련(仰蓮)을 조각하였고 그 아래에는 보다 평범하게 다시 연화를 나타내었으며 다시 그 아래는 유두(乳頭)모양의 돌출된 선을 돌려 마감하고 있으며, 하부에는 아름다운 당초문을 조각하였다. 지금은 대흥사서산대사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현재의 규모는 작으나 영곡(靈谷)·영파(影波)·만화(萬化)·운담(雲潭)·아암(兒庵) 등의 고승들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암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