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완호대사와 제성대사가 중건한 사찰 건물이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1813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건물 내부에 삼존상을 뒤로 1,000여 개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경주에서 조성되어 배 2척으로 해남 대흥사로 옮겨왔는데 1척은 표류해 일본까지 갔다가 돌아와 추가로 봉안되었다. 천불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데 정면 3칸은 모두 빗꽃살과 소슬꽃살창문이다.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로서 짜임새가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천불전을 대표할 수 있는 건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완호대사와 제성대사가 중건한 사찰건물. 불전.
개설
『대둔사지(大芚寺誌)』(1823)에 기록된 바와 같이 대흥사는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당우(堂宇)들을 배치하였다. 북원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백설당, 청운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종무소 등이 또 다른 군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남원의 오른편에는 표충사와 부속건물, 성보박물관이 있고 그 뒤편에는 대광명전이 또 다른 별원(別院)을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 변천
내용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인 천불전은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한 높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의 원형기둥 위를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이 위에 다시 평방(平枋)을 얹었다. 공포의 짜임은 외3출목(外三出目) · 내4출목(內四出目)으로 살미첨차[山彌檐遮]의 끝은 앙서[仰舌]로 되어 있고, 앙서는 연꽃봉오리로 조각하였다. 어간(御間) 정면 기둥머리에는 용두조각이 끼워져 있다.
가구(架構)는 대들보를 앞뒤 평주(平柱) 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걸었다. 좌우 측면의 어간 기둥의 대들보에 용머리로 장식된 충량(衝樑)을 걸었다. 천장은 우물천장과 빗천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물천정의 반자 중에는 범어(梵語)가 쓰여진 것도 있다.
정면에는 3칸 모두 빗꽃살과 소슬빗꽃살창문을 달고, 왼쪽 측면에는 외짝문을 달았으며, 이외의 나머지 면은 모두 벽체로 마무리하였다. 벽체는 인방재로 상하를 나누어 상부에는 내외부 모두 각기 다른 벽화가 그려져 있고 하부는 세로로 세운 판재로 마감하였다.
내부 불단에는 삼존상 뒤로 1,000여 개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정면의 계단 좌우로는 당간지주가 각기 자리하고 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일본표해록』(풍계현정, 김상현 역,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
- 『대흥사』(목정배·이응묵·이완우, 대원사, 1996)
- 『한국의 사찰』(한국불교연구원 편, 일지사, 1974)
- 문화재청(www.cha.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