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의 복사냉각에 의하여 기온이 이슬점 온도 이하로 내려갔을 때 맺힌다. 이슬에 대한 옛 기록은 많지 않으며 조선시대의 것이 약간 있을 뿐이다. 그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1411년(태종 11) 함주·정주에 감로(甘露)가 내렸다. 1414년 함흥 월광리와 정평백운산(白雲山)에 감로가 내렸다. 1415년 함흥 덕산리에 감로가 내렸다.
② 1426년(세종 8) 헌릉(獻陵)의 소나무와 잣나무 위에 감로가 내렸고, 또 경복궁 후원에도 내렸으며, 황주에도 내렸다. 1434년 3월 감로가 광주(廣州)의 헌릉에 내렸고 경복궁 후원에도 내렸다. 1436년 정평과 영흥에 감로가 내렸는데 색깔이 밀랍[蠟]과 같이 희고 맛이 꿀과 같이 달았다.
③ 1450년(문종 즉위년) 5월 함길도에 감로가 내렸다. ④ 1461년(세조 7) 4월 후원에 감로가 내렸다.
⑤ 1790년(정조 14) 9월 경연에서 신하가 말하기를 “감로가 내렸으니 사책(史冊)에 기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인주(人主)는 농사가 잘되는 것을 상등(上等)의 상서로 삼는 것 외에 이러한 상서는 구할 바가 못 된다.” 하였다.
이상에서는 이슬을 감로, 즉 단이슬로 마치 맛이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1436년의 정평과 영흥에 내린 이슬은 그 맛이 꿀과 같이 달았다는 기록은 실로 흥미 있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