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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개념
대류구름에 의하여 형성된 적란운에서 생긴 얼음이나 불규칙한 덩어리 형태로 내리는 강수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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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류구름에 의하여 형성된 적란운에서 생긴 얼음이나 불규칙한 덩어리 형태로 내리는 강수현상.
내용

그 지름이 5㎜에서 50㎜ 또는 그 이상이 되는 것도 있다. 우박은 투명한 얼음덩어리만으로 될 때도 있고 투명한 층(보통 1㎜ 이상)과 반투명한 층이 서로 겹쳐서 될 때도 있다.

우박은 강한 뇌전(雷電)을 동반하며 비에 섞여 내리는 수가 많다. 불투명하고 백색으로 된 얼음입자의 강수현상인 싸라기눈 주위에 물방울들이 얼어붙게 되면 싸라기우박(small hail)이 된다.

이 크기는 지름이 보통 5㎜ 미만이고, 굳은 땅에 부딪히면 소리를 내면서 튀어오른다. 우박은 농작물을 비롯하여 재산에 막대한 폐해를 준다. 심할 경우에는 가축과 인명에도 피해를 줄 때가 있다. 그러므로 우박에 대한 옛날 기록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록을 살펴보면, 우박만을 표현한 박(雹)이 10회, 큰우박[大雹]이 1회, 천둥번개가 수반된 뇌박(雷雹)이 3회, 가장 많은 것이 비를 수반한 우박으로서 18회, 서리와 같이 떨어진 상박(霜雹)이 8회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우박의 크기를 밤알 · 계란 크기에 비유하였는가 하면 우박에 맞아 새가 죽었다는 등의 기록도 있다.

≪고려사≫ 오행지(五行志)에서 우박의 기록을 살펴보면, 1013년(현종 4) 3월 갑오(甲午)에 내린 우박을 시작으로 1392년(공양왕 4) 4월 경오(庚午)에 내린 우박까지 188회의 기록이 있다.

이것을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박이 3회, 우박이 152회, 큰우박이 31회, 천둥과 벼락이 수반된 것이 2회로 되어 있으며 가장 발생빈도가 큰 달은 4월로 55회, 다음은 5·3·9·8월의 순이다.

우박의 크기는 ≪삼국사기≫에서보다 훨씬 다양하게 표현하여 밤 · 살구 · 자두 · 매실 · 새알 · 배 · 주먹 · 탄환(彈丸)의 크기 등으로 비유하고 있으며, 그 상태나 피해상황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경상도 안동일대에 큰 우박이 내렸는데 고라니 · 사슴 · 새들이 모두 맞아죽었으며, 우박 한 덩어리를 여러 사람이 능히 들 수가 없었다(慶尙道安東界 大雨雹 麋鹿 鳥雀 中者皆死 有雹一枚 數人不能擧, 忠烈王二十七年五月).”

크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나 보기 드문 크기의 우박이라 여겨진다. 조선시대 기록의 특징은 날짜와 지명이 비교적 잘 나타나 있고, 우박이 내린 지역의 너비와 길이 및 시작과 끝난 시각 등이 보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형상과 땅에 쌓인 우박의 깊이도 관측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박의 월별 발생빈도를 살펴보면 〈표〉와 같다.

① 고려시대
종류\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우박 1 9 27 41 26 2 1 13 25 5 · 2 152
큰 우박 · · 2 13 7 1 · 1 5 · 1 1 31
· · 2 1 · · · · · · · · 3
진뢰박 · · · · · · · · 1 1 · · 2
1 9 31 55 33 3 1 14 31 6 1 3 188
② 조선시대
종류\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우박 · · 6 9 11 2 5 3 5 · 1 · 42(2)
큰 우박 · · · 3 8 4 3 2 1 1 · · 22
뇌박 · · · 1 · · 1 · · · · · 2
진뢰박 · · · · · · · 1 · · · · 1
진뢰박 · · · · · · · · · 1 · · 1
얼음 · · · · · · · · · · · 1
· · 6 13 20 6 9 6 6 2 1 · 69(2)
〈표〉 우박의 종류별 월별 빈도
*주: 월은 음력. ( ) 안은 월표시가 없는 우박.

또한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우박과, 지진에다 천둥을 동반한 우박이 각각 1회씩 기록되어 있고, 얼음이 내렸다는 기록도 한 번 나타나 있다. “홍원 등지에 큰 우박이 내렸는데, 그 크기가 달걀 만해서 날아가던 새가 모두 죽고 사람도 혹 맞아 죽었다(洪原等地 大雨雹 大如鷄卵 飛鳥皆斃 人或中死, 光海十三年五月).”

텔만(Talman)은 1788년 7월 13일의 넓은 지역에 걸친 큰 우박피해가 프랑스혁명의 발발을 촉진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박은 국지적인 피해에 그치지만 때에 따라서는 넓은 지역에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박피해란 어떠한 기상재해보다도 비참할 정도로 심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여러 가지 방박법(防雹法)이 고안되어 있다.

이와 같은 피해와 더불어 대부분은 여름철에 나타나는 이상현상으로 어떤 민족에 있어서도 주의 깊게 관찰되었으며 또한 기록에 남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과 같이 조직적인 관측과 보고 및 기록을 남긴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시대의 것으로는 실로 잘 정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단지 피해만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모든 상황을 기록에 남겼다는 사실은 과학적인 사고가 철저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국역증보문헌비고』(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9)
『역주고려사』(동아대학교고전연구실, 1982)
『李朝鮮氣象學史硏究』(田村專之助, 三島科學史硏究所,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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