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원득(元得), 호는 냉천(冷泉). 아버지는 증 좨주(贈祭酒) 박윤원(朴胤源)이며, 어머니는 김시관(金時筦)의 딸이다.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아 15세가 되기 전에 육경(六經)에 통하였으며, 시와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홍직필(洪直弼)과 교분이 깊어 학문을 논한 왕복이 많았다.
음보로 강릉참봉(江陵參奉)이 되었고, 한성부주부(漢城府主簿)·의빈부도사(義賓府都事)·홍천현감(洪川縣監)을 지내고 고양군수(高陽郡守)가 되었으나, 백성들이 경작하는 왕가외척(王家外戚)의 묵은 토지를 관찰사가 다시 돌려주려고 하는 데에 항명, 사직하였다.
그 뒤 사옹원첨정(司饔院僉正)에 기용되었고, 대흥군수(大興郡守)·연안부사(延安府使) 등을 거쳐 서흥부사(瑞興府使)가 되었는데, 그 지방의 기근을 구제하려고 애쓰다가 과로로 죽었다.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증손 박정양(朴定陽)이 편집한 『냉천유고(冷泉遺稿)』 7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