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웅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항일비밀결사인 대구사범학교 문예부에서 활동하였고, 노성국민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한 교육자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9년
사망 연도
1943년
출생지
충청남도 금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항일비밀결사인 대구사범학교 문예부에서 활동하였고, 노성국민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한 교육자 ·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남도 금산 출신. 1940년 대구사범학교 재학중 박효준(朴孝濬)·이태길(李泰吉)·문홍의(文洪義)·강두안(姜斗安)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대구사범학교 문예부를 조직하였다.

문예부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표면상으로는 문예활동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전후 9회의 회합을 통하여 민족문화존중과 반일의식을 연마하는 것이었다. 박찬웅은 문예부의 기관잡지 『학생(學生)』을 발간할 때 출판에 필요한 경비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졸업 후 충청남도 논산 노성국민학교에 부임하여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민족의식을 앙양, 고취시키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여름에 대구사범학교의 비밀교양지인 『반딧불』이 충청남도 대전의 일본경찰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발각됨으로써, 1941년 7월 강경경찰서에 검거되었다. 그 뒤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모진 고문으로 미결수인 상태로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 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정세현, 일지사, 1975)
「한국근대학생운동조직의 성격변화」(조동걸, 『한국근대민족주의운동사연구』, 일조각, 1987)
집필자
조동걸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