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금산 출신. 1940년 대구사범학교 재학중 박효준(朴孝濬)·이태길(李泰吉)·문홍의(文洪義)·강두안(姜斗安)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대구사범학교 문예부를 조직하였다.
문예부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표면상으로는 문예활동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전후 9회의 회합을 통하여 민족문화존중과 반일의식을 연마하는 것이었다. 박찬웅은 문예부의 기관잡지 『학생(學生)』을 발간할 때 출판에 필요한 경비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졸업 후 충청남도 논산 노성국민학교에 부임하여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민족의식을 앙양, 고취시키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여름에 대구사범학교의 비밀교양지인 『반딧불』이 충청남도 대전의 일본경찰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발각됨으로써, 1941년 7월 강경경찰서에 검거되었다. 그 뒤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모진 고문으로 미결수인 상태로 옥사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