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주역집해』, 『괴천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김방한(金邦翰)·유극배(柳克培) 등과 함께 『주역집해(周易集解)』 3권을 찬술하여 경연(經筵)에 진상하자 왕이 극찬하여 내각(內閣)에서 감정(勘訂: 헤아려 정정함)하여 간행하도록 명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의 학자들은 『주역』에 대하여 발군의 실력을 갖춘 그를 고려 때 역동(易東)으로 불린 우탁(禹倬)에 비하여 ‘역남선생(易南先生)’이라고 일컬었다.
후에 동궁폐위사건이 일어나자 성균관의 유생 92인과 혈서로 세자를 구하려는 상소를 하였다.
아울러 국정과 시폐에 대한 대책으로서 현재(賢才)를 중용(重用)하고 농업과 학문을 장려하며 국방의 수비를 철저히 할 것 등을 건의하였다. 한편 사회를 정화하는 제도적인 방법으로 19조항으로 된 향음주례의식(鄕飮酒禮儀式)을 제안하였으며, 저서로는 『괴천문집(槐泉文集)』 2권 1책과 『주역집해』 3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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