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동궁서연관, 예문관지제교, 영암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10년 점마별감(點馬別監)에 차정되어 헌마(獻馬) 업무를 관장하였으며, 1414년 하륜(河崙)이 발의한 통진고양포(通津高楊浦) 제방수축에 직예문관(直藝文館)으로서 참여하였으나 폐단이 일어 일시 파직되었다가 곧 복관되었다. 1415년 전라도경차관으로 관찰사 박습(朴習) 등과 김제 벽골제(碧骨堤)를 수축하였다.
1416년 동궁서연관(東宮書筵官)·예문관지제교(藝文館知製敎)·겸춘추관기주관(兼春秋館記注官)의 화요직(華要職)을 역임하였으며 1421년(세종 3) 영암군수(靈巖郡守)를 지냈다. 1422년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에 가서 왜구를 금하고 피로인(被擄人)을 쇄환하는 일에 실효를 거두었으며, 이 공으로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에 올랐다.
1426년 남원부사 재직 시 관청의 물품을 횡령하고 뇌물을 받은 일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고, 결장(決杖)과 자자(刺字)의 형을 받았다. 『해동필원(海東筆苑)』에 이름이 오른 명필로, 하륜의 아버지 하윤린(河允潾)의 신도비를 쓰고 음기(蔭記: 비의 뒷면에 기록되는 글)를 짓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