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협계(俠溪). 아버지는 섭상서우사낭중(攝尙書右司郎中) 배관(裵寬)이고. 처는 병부시랑 양유송(梁惟竦)의 딸이며, 아들로는 배진(裵晉)·배연(裵衍)·배취(裵就)·배준(裵俊)·배담(裵曇)이 있다.
숙종(肅宗)의 태자 왕우(王俁: 睿宗)의 잠저(潛邸) 때 부리(府吏)로 있다가 예종(睿宗)이 즉위하자 내시가 되었다.
1123년(인종 1) 시각문지후(試閣門祗候)가 되고 남경소윤(南京少尹)을 거쳐 오랫동안 근시(近侍)로서 장주(掌奏)를 맡았다. 1142년 장주승선(掌奏承宣)으로 관반(館伴: 사신 접대 일을 맡은 관직) 김단(金端)과 함께 금나라의 사신들의 연등행사 구경을 주청하였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또한 창녀를 처로 삼은 관계로 대간의 탄핵으로 승선에서 물러난 뒤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에 제수되었으나, 풍속을 교화하는 일을 맡는 풍헌직(風憲職)은 더욱 마땅한 바가 아니라는 대간들의 반대로 1143년 지리부사(知吏部事)로 고쳐 임명되었다. 1145년 우상시(右常侍)로서 간의대부 최함(崔諴)과 함께 상소하여 국사를 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