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제23대 고종 때 삼랑성과 신니동을 도읍지로 점지한 풍수지리가. 도참사상가.
내용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에 임시도읍을 정하고 있던 왕이 적당한 도읍지로 어디가 좋으냐고 묻자, 삼랑성(三郎城)과 신니동(神尼洞)에 가궐(假闕)을 지으면 적이 물러가 평화가 올 것이라 하여 시행되기도 하였다.
1264년(원종 5) 몽고가 화평을 구실로 왕을 입조하라고 요구하자 권신인 김준(金俊)을 통해서 진언하기를, 마리산(摩利山) 참성(塹城)에서 왕이 친히 제사를 지내고, 또 삼랑성과 신니동에 가궐을 짓고 친히 대불정오성도량(大佛頂五星道場)을 열면 8개월이 안 되어 친조(親朝) 문제가 해결되고 주위의 대국들이 조공을 드리러 올 것이라고 하였다.
왕은 그 말을 믿고 내시대장군(內侍大將軍) 조문주(趙文柱), 국자감좨주 김구(金坵), 장군 송송례(宋松禮) 등에게 명하여 가궐을 짓게 하였다. 그 뒤 다시 도참설에 근거하여 왕의 이름에 교(釗)자를 넣어 어인(御印)의 개정을 요청하였고, 왕은 이에 따라 이름을 바꾸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高麗)의 도교사상(道敎思想)」(차주환, 『한국의 도교사상』, 동화출판공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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