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선전관, 함경도병마절도사, 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초계군수가 되어서는 교육정책에 힘썼으며, 1708년에는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17년 함경도병마절도사를 거쳐,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절도사로 있을 때 군기들을 잘 수선하여 갖추어두고 병사들의 훈련에 힘써 국방에 주력하였다.
경종이 즉위하고 김일경(金一鏡) 등이 정권을 잡자, 노론의 구신들을 몰아낼 때 연좌되어 파직되었다. 1722년(경종 2) 목호룡의 고변으로 관련자들이 문초받던 도중에 김성절(金盛節)이란 자가 고문에 못 이겨 백시구가 평안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기로소(耆老所)에 빌려준 은자를 모의에 사용하였다고 자백하였다.
그러나 백시구는 심문에 단호히 불복하였다. 결국 고문에 못이겨 옥사하였으나, 뒤에 1741년(영조 17) 영조가 임인옥안(壬寅獄案)을 불태우고 탕평책을 쓸 때에 백시구의 관직을 복구하고 몰수하였던 재산도 후손에게 돌려주었으며, 호조판서를 추증하였다. 유저(遺著)로는 『충장부군시고(忠莊府君詩稿)』 1책이 있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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