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언화(彦華).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백효삼(白效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교(參校) 백사수(白思粹)이고, 어버니는 왕자사부(王子師傅) 백익장(白益長)이며, 어머니는 최경남(崔慶男)의 딸이다.
1525년(중종 20)년 식년시에서 생원·진사에 모두 합격하였고, 1537년(중종 32)에 식년 문과에 갑과 2등으로 종제 백인걸(白仁傑)과 함께 급제하였다. 1539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1541년에는 사헌부헌납(司憲府獻納)이 되었다. 이듬해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 대사헌 정순붕(鄭順朋) 등과 함께 윤임(尹任)과 윤원형(尹元衡)의 죄과를 비호하는 데 앞장섰다.
1545년(명종 즉위년)에 다시 사헌부장령이 되어 종실인 봉성군(鳳城君)의 죄를 들어 멀리 찬배시킬 것을 주청하였다. 같은 해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가 되고, 이어 시독관(侍讀官)이 되어 과거시험을 감독하였으며, 곧이어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이 되었다.
1547년(명종 3) 내자시정(內資寺正)으로 왕명을 받아 평안도의 민정을 살피고 돌아왔으며, 『중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549년에 양주목사(楊州牧使)가 되고, 1553년에는 내섬시정(內贍寺正)이 되었으며, 이듬해는 좌부승지(左副承旨)를 거쳐 우승지를 역임한 뒤 도승지가 되었다. 그 뒤 1564에는 공조참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