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승려가 돈이나 쌀 등 물건을 기부하는 시주(施主)에게 부처와 좋은 인연을 맺으라고 권고하는 내용의 글인 모연문(募緣文)을 펴놓고 북을 울리면서 염불을 하면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던진다.”고 하였다.
또 승려들이 많은 떡을 만들어가지고 속가(俗家)에 와서 한개를 주고 속가의 떡 두개와 바꾸기도 하는데, 이 때 승려가 주는 떡을 ‘승병(僧餠)’이라 한다. 승병을 아이들에게 먹이면 마마를 곱게 한다고 믿었다.
또한, 여러 절의 상좌중이 재(齋)를 올릴 쌀을 오부(五部)내에서 빌기 위하여 새벽부터 바랑을 메고 돌아다니면서 문 앞에 와 소리를 지르면 민가에서 각기 쌀을 퍼주었다. 이는 새해의 복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행하는 풍속이다. 여기에서 오부는 조선시대 한성의 중부·동부·서부·남부·북부로서 곧 서울장안을 뜻하는 것이다.
승려들이 섣달 그믐날밤 자정이 지나면 민가의 문 밖에 와서 “재 올릴 쌀 주시오.”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수세(守歲)하느라고 모여앉아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서로 돌아보며 “벌써 새해가 다 되었군.” 하며 새해를 실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법고 풍속이 1776년(정조 즉위년) 승려들의 도성 출입을 금하게 된 뒤부터는 성 밖에서만 행하여졌다. 법고는 단순한 불교적 행사라기보다는 제액초복을 위한 세시풍속의 하나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