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기 왕경(王京)을 지키는 핵심적 군단인 이른바 구서당(九誓幢)의 한 부대로, 686년(신문왕 6)에 적금서당(赤衿誓幢)과 함께 보덕성(報德城: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소재)의 고구려 유민으로써 편성되었다.
이들은 고구려 멸망 후 신라에 의해서 보덕왕(報德王)에 봉해진 부흥운동군의 수령 안승(安勝)을 따라서 금마저(金馬渚)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다가 675년(문무왕 15) 11월안승의 족자(族子)인 장군 대문(大文)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로 돌아간 뒤에 남쪽 주군(州郡)에 옮겨 살았는데, 10년 뒤인 686년에 구서당에 편입되었다.
소속군관으로서는 최고지휘관인 장군 2명을 비롯하여 대관대감(大官大監) 4명, 대대감(隊大監) 5명(보병을 지휘하는 자가 2명, 기병을 지휘하는 자가 3명임), 제감(弟監) 4명, 감사지(監舍知) 1명, 소감(小監) 23명(보병을 지휘하는 자가 4명, 기병을 지휘하는 자가 6명, 나머지는 알 수 없음), 대척(大尺) 23명(13명은 대관에 속하고 나머지 보병을 지휘하는 자가 4명, 기병을 지휘하는 자가 6명임), 군사당주(軍師幢主) 1명, 대장척당주(大匠尺幢主) 1명, 보기당주(步騎幢主) 4명, 착금기당주(著衿騎幢主) 18명, 흑의장창말보당주(黑衣長槍末步幢主) 20명, 군사감(軍師監) 2명, 대장대감(大匠大監) 1명 보기감(步騎監) 4명, 착금감(著衿監) 18명을 두었다. 옷깃[衿]의 빛깔은 벽황(碧黃)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