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벽돌을 장방형으로 쌓아서 만든 무덤양식. 전실분.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벽돌쌓는 수법은 옆으로 3단, 세워서 1단을 반복해 축조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매장은 널길을 통해 널〔木棺〕이 안치되며 부부묘나 가족묘일 경우 널길 입구를 개폐(開閉)해 추가장(追加葬)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백제지역에서는 공주로 수도를 옮긴 뒤 중국 화남(華南)지방의 영향을 받은 벽돌방무덤이 축조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무령왕릉(武寧王陵)과 송산리 제6호분을 들 수 있다.
이 두 무덤의 천장은 모두 터널식으로 북벽과 동서 양 벽에 창살문 모양과 등잔을 넣었던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특히, 공주 유일의 벽화고분인 송산리 제6호분의 경우, 벽면에 진흙을 바르고 호분(胡粉)으로 그 위에 청룡(靑龍)·백호(白虎)·주작(朱雀)·현무(玄武)의 사신(四神)을 그려 넣어 각각 그 방위를 수호하고 진무하게 하였다.
의의와 평가
하지만 이 지역을 점령한 고구려인들에게는 이와 같은 벽돌의 사용이 적극적으로 계승되지 않은 듯하다. 고구려지역에서 벽돌무덤이 축조된 사례는 전무하다. 신라에서는 황룡사지의 일부 구간에 벽돌이 쓰인 유구가 있으나 무덤에서 발견된 사례는 없다.
반면 백제는 고구려·신라에 비하면 중국 남조(南朝) 계통의 벽돌무덤이 2기나 축조되어 있으며 그 외에 여러 성격의 유적에서도 벽돌이 출토된 바 있다. 따라서 백제의 벽돌방무덤은 백제가 육조시대의 중국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문화교류를 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한국고고학개설』(김원룡, 일지사, 1979)
- 『한국의 고분』(김원룡,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 「무령왕릉 및 송산리 6호분의 전축구조에 대한 고찰」(윤무병,『백제고고학연구』, 학연문화사, 1992)
- 『樂浪時代の遺蹟』(朝鮮總督府, 1925)
- 「漢末-魏晋代の多室墓の性格」(加藤修,『考古學論考-小林行雄博士古稀記念論文集』, 198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