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관서.
내용
516년(법흥왕 3) 혹은 그 이듬해에 설치되어 군사에 관한 사무를 총괄하였다. 그 뒤 신라의 군사적 발전과 더불어 꾸준히 확장, 발전하여 그 장관직인 영(令)은 최초 1명이었다가, 544년(진흥왕 5)에 1명, 659년(태종무열왕 6)에 다시 1명이 늘어나 모두 3명이 되었다. 다만 삼국통일 후 1명으로 감원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병부령은 상고의 대보(大輔)직에서 기원한다는 견해도 있는데, 관등이 대아찬 이상 태대각간(太大角干)까지인 자로서 임명하였으며, 또한 재상 · 사신(私臣)을 겸할 수 있었다.
하대에는 상대등으로 진출하는 하나의 경로가 되었다. 그밖에 관원으로 대감(大監) 3명, 제감(弟監) 2명, 노사지(弩舍知) 1명, 사(史) 17명, 노당(弩幢) 1명을 두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
- 『신라정치제도사』(이인철, 일지사, 1993)
- 「신라병부령고」(신형식, 『역사학보』 61, 1974)
- 「三國史記にあらねわた新羅の中央 行政官制について」(井上秀雄, 『朝鮮學報』 51, 1969 ;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1974)
- 「新羅の宰相制度」(木村誠, 『東京都立大學 人文學報』 118,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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