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문왕 대흠무(大欽茂)는 즉위 직후에 대흥(大興)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으나 774년(문왕 37) 보력으로 개원(改元)하였다. 이 사실은 중국 길림성(吉林省) 돈화현(敦化縣)육정산(六頂山) 고분군 내에서 발견된 정혜공주(貞惠公主)의 묘비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비문에 “보력 4년(寶曆四年)”과 “보력 7년(寶曆七年)”이라는 연대기와 함께 문왕의 존호인 “대흥보력효감흥륜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興輪聖法大王)”이 보이는데, 연대기와 함께 나타나는 일간지(日干支)와 존호의 용례를 통하여 보력이라는 연호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연호는 그뒤 대흥이라는 연호로 다시 개원되었으며 그 근거는 『일본일사(日本逸史)』에 “大興五十七年(대흥 57년)”이라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