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와 가마터·방형도랑무덤 관련 복합유적.
개설
그 결과 고인돌[支石墓]·돌널무덤[石棺墓]·무논[水田]·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를 비롯해 철기시대 독무덤[甕棺墓], 조선시대 일반무덤[民墓] 등이 확인되었다. 고려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한 지역에서만도 집터 200여 기 이상과 방형주구묘 103기, 무논 유적 2,000여 평 등이 확인되었다.
내용
집자리와 더불어 생활용기를 제작했던 요지(窯址) 30여 기, 곡식 등을 저장했던 저장시설 50여 기, 고인돌·돌널무덤을 비롯한 20여 기의 무덤이 공간 배치를 달리하며 확인되었다. 무덤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방형주구묘이다. 방형주구묘는 총 103기가 확인되었다. 규모는 한 변이 20m를 넘는 대형에서 7∼8m 정도의 작은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무덤은 성토(盛土)부분이 오랜 세월로 인해 소실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남아있는 상태로 보아 움을 파서 널 또는 돌널을 안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물은 토기류가 대부분이나, 청동거울[銅鏡]·대롱옥[管玉]·쇠투겁창[鐵矛] 등의 금속류도 함께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무논 유적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폭이 좁은 계곡부의 중앙을 관통하는 하천을 정비해 수리시설을 갖춘 뒤, 그 양쪽을 무논으로 사용한 습지형(濕地形) 무논이다. 수로(水路)는 무논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일시적으로 가두어 두거나 다시 다른 무논으로 들어가게 하는 정교한 보(洑) 시설을 하고 있어서, 당시 무논 경작은 물론, 토목·관개(灌漑)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로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구릉 집자리에서 출토된 송국리형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징
방형주구묘의 경우, 축조시기는 두형토기(豆形土器)를 중심으로 덧띠토기[粘土帶土器]·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4세기 후반 이후이며, 기원전 3∼2세기에 집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경우 방형주구묘는 농경사회단계인 야요이(彌生)시대의 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긴키[近畿]지방을 중심으로 축조되어,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등장하는 4세기 전반까지 지속된 묘제이다. 이로 보아 이 방형주구묘는 일본 주구묘의 기원과 일본 고대문화를 이룩한 세력집단의 실체 등에 대한 문제점을 풀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관창리취락지의 사람들은 구릉에 입지한 유적이 일반적으로 영위하던 생계경제 방식 즉, 어로활동을 제외한 농경·수렵·채집을 병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다른 유적과의 조성비 비교를 통하여 볼 때, 수렵이나 농경활동의 비율이 뚜렷하게 높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채집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 『관창리 유적』(한국고고환경연구소, 2001)
- 『관창리 주구묘』(한국고고환경연구소, 1997)
- 『관창리 주구묘』(고려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 1997)
- 「마제석기 분석을 통한 관창리유적 B구역의 성격 검토」(손준호, 『한국상고사학보』제51집, 2003)
- 「보령 관창리유적A, F지구 발굴조사 개보」(아주대학교 박물관, 『과기고고연구』 1,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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