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시 ()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보령, 서천 부분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보령, 서천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
정의
충청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청양군·부여군과 접하고 서쪽은 서해에 면하며, 남쪽은 서천군, 북쪽은 홍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5°57′∼ 1267°44′, 북위 36°10′∼ 36°31′에 위치한다. 면적은 569.31㎢이고, 인구는 10만 475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5개 행정동(10개 법정동), 235개 행정리(101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충청남도 보령시 명천동에 있다.

자연환경

지형은 차령산맥의 남서 끝부분에 있어 동북부에 오서산(烏棲山, 791m), 중앙에 성주산(聖住山, 680m)·봉화산(烽花山, 329m), 남동부에 월명산(月明山, 544m), 남부에 장태산(367m) 등으로 산악지대를 이루며, 이 가운데 오서산은 충남의 차령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서부 해안지대는 대체로 평지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에는 남북으로 길게 산록완사면(山麓緩斜面)이 발달하여 산지와 평지의 점이지대(漸移地帶)를 이룬다.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며,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여 일찍부터 간척지로 이용되고 있다.

대천천(大川川)·주교천(舟橋川)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분포하고 있어 농경지로 이용되며, 남동부의 산악지대에는 웅천천(熊川川)과 그 지류에 의해 깊은 계곡이 발달하여 그 사이에 좁고 긴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기후는 해안에 면해 있어 대체로 온화한 편이며, 연평균 기온 12.9℃, 1월 평균기온 -0.9℃, 8월 평균기온 25.7℃이며, 연 강수량은 1,216.2㎜이다.

역사

선사시대유적으로는 주산면 삼곡리, 미산면 삼계리, 주교면 관창리 등지에서 고인돌이, ·외연도리·삽시도리·녹도리 등지에서 조개더미가 발견되었다. 또, 갈현리 등지에서는 간돌검 및 방추자 등이 출토되었다.

이곳은 삼한시대의 만로국(萬盧國)이었고, 백제 때는 신촌현(新村縣 또는 沙村縣)과 사포현(寺浦縣)이 있었던 지역이다. 신라 경덕왕 때 신촌현은 신읍현(新邑縣)으로 고쳐 결성군(潔城郡)의 영현으로 삼았고, 사포현은 남포현(藍浦縣)으로 고쳐 서림군(西林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지(聖住寺址)에는 최치원(崔致遠)이 짓고 최인연(崔仁滾)이 쓴 낭혜화상탑비(郎慧和尙塔碑)가 있다. 신라 최대의 비석인 이 비는 890년(진성여왕 4)에 낭혜가 당나라에 갔다가 20년 만에 귀국한 기념으로 세운 것이라 한다. 또한 이곳에서는 850년경성주사 중창을 기념하기 위해 한림랑(翰林郞) 김입지(金立之)가 찬한 성주사비(聖住寺碑)가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비편 12개가 발견되어 신라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고려 초에 신읍현은 지금의 보령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홍주에 예속시켰으며, 1106년(예종 1)에 감무를 두었다. 남포현은 그대로 계승하다가 1018년(현종 9)에 가림현(嘉林縣)에 예속시켰고, 뒤에 감무를 두었다. 남포는 1380년(우왕 6)에 왜구로 인한 피해가 커 인구가 흩어졌으나 1390년(공양왕 2)에 비로소 진성을 두르고 유망인을 불러 모았다.

고려 말의 성리학자 백이정(白頤正)은 남포 출신으로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으며, 원나라에 들어가 주자학을 배워 와서 이제현(李齊賢)·박충좌(朴忠佐)를 가르쳤다. 1378년(우왕 4)과 1381년에 왜구가 비인에 침입했고, 1389년(공양왕 1)에는 보령과 남포까지 침입하자 양광도 도체찰사 왕안덕이 이를 격퇴하였다.

지금의 보령 지역은 공주목의 남포현과 홍주목의 보령현 지역이었다. 1397년(태조 6)에 병마도를 폐지하고 전국의 요새지에 15개 진을 설치하면서 충청도에도 3개 진을 설치했는데, 남포도 그 중 하나로 진병마사 겸 판현사(鎭兵馬使兼判縣事)를 두었다. 1466년(세조 12)에는 진을 혁파하고 현감으로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초 남포현의 호구수는 180호, 인구수는 919명이었다.

보령현은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두었고, 1652년(효종 3)에는 도호부로 승격시켜 수군절도사 겸 부사(水軍節度使兼府使)를 두었다가 1655년에 다시 현으로 강등시켰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초 보령현의 호구수는 365호, 인구수는 1,213명이었다. 보령에는 관방으로 수군절도사의 병영이 있었고, 충청도 수군절도사와 수군우후(水軍虞侯) 각 1명을 두었다.

남포면 의 남포향교는 태종 때 창건되고 1530년(중종 25)에 중수되었으며, 주포면의 보령향교는 1723년(경종 3)에 창건되었다. 이 밖에 청라면에 있는 화암서원(華巖書院)은 이지함(李之菡)·이산보(李山甫)·이몽규(李夢圭) 등 3인을 모신 곳으로 1610년(광해군 2)에 건립하여 1686년(숙종 12)에 사액되었다.

1895년의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보령군이 되었으며, 명암면을 우라면으로, 오산외면을 오삼전면으로 고치고 금신면을 오천군에 넘겨주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포군의 9개 면과 오천군의 4개 면, 그리고 결성군 가산면 일부와 홍산군 상서면 자멸리를 병합해 다시 보령군으로 개편하였다.

남포지역은 을미의병운동 때 김복한·이설 등을 중심으로 거의했던 홍주의병운동의 중심지였다. 을미 홍주의병운동이 실패한 후 이 운동에 참여했던 이세영(李世永)이 1896년 2월에 황재현(黃載顯) 등의 유생과 함께 남포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그 뒤 1906년 병오의병운동 때는 민종식(閔宗植)의 홍주의병이 홍산에서 거의하여 서천과 남포를 거치면서 1만 명의 의군(義軍)을 모아 보령을 지나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이처럼 보령·남포 지역은 한말 충청도 의병운동의 중심역할을 하였다.

1963년 1월 1일 대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0년 2월 27일미산면에 성주출장소가, 1971년 2월 1일에는 주포면에 주교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3년 3월 15일오천면 삽시도리 가운데 외파수도·내파수도·외도가 서산군 안면읍에, 오천면 간현2리가 주포면에 편입되었다. 같은 해 12월 22일오천면에 대천어항출장소를 설치, 1읍 9면 3출장소를 관할하게 되었다.

그 뒤 1986년 1월 1일대천읍이 대천시로 승격, 분리되어 나갔다. 같은 해 3월 27일미산면성주출장소가 성주면으로, 1989년 4월 1일주교출장소가 주교면으로 각각 승격하였다. 1994년 2월 7일원산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5년 1월 1일에 도농통합에 따라 대천시와 보령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보령시가 되었으며, 3월 2일웅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유물·유적

신석기시대 이전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청동기시대 이후에는 집자리 유적으로 주교면 관창리·관산리·교성리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다. 관산리유적은 중기의 대규모 취락유적으로 송국리형 집자리가 많으며 주구묘도 있다. 교성리유적은 후기 무문토기시대의 고지성 취락으로 특수한 용도를 가졌던 듯하다.

고인돌유적으로는 청소면 진죽리, 주교면 관창리·주교리·신대리, 주포면 연지리·관산리, 남포면 양기리·신흥리, 웅천읍 죽청리·황교리·소황리, 주산면 삼곡리에 있다. 선돌은 주산면 삼곡리에 분포하고 있다.

또, 청동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쳐 형성된 조개더미 유적으로는 오천면의 원산도에 세 곳을 비롯해 풋사리[草箭里]·오로봉(五老峰)·삽시도·녹도·고도·외연도·고대도 유적을 들 수 있다.

고분유적으로는 주산면 장암리의 움무덤유적, 웅천읍 구룡리·노천리, 주포면 보령리의 돌방무덤유적이 있다.

관방유적으로는 진당산성(鎭唐山城)·고남산성(古南山城)·아현산성(我峴山城)·대봉산성(臺峰山城)·달산리 산성(達山里山城)·봉화산성(烽火山城)·대천리 산성(大川里山城)·운봉산성(雲峰山城)·창암리 산성(倉岩里山城)·황률리 산성(篁栗里山城)·삼곡리 산성(三谷里山城)·향천리 산성(香泉里山城)·오서산성(烏棲山城)이 있다.

읍성으로는 주포면 보령리의 보령성곽(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남포면 읍내리의 남포읍성(충청남도 기념물, 1976년 지정), 오천면 소성리의 보령 충청수영성(사적, 2009년 지정) 등이 있다. 또, 오천에는 고려 말부터 수영(水營)이 설치되어 서해안을 방어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봉수조직은 전라남도 순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제5거선(炬線)에 해당하여 직봉(直烽)에 이어지는 간봉(間烽)이 있었다. 보령시재의 봉수는 옥미산(玉眉山, 수부리)·조침산(助侵山, 송학리)·홍양곶(洪陽串, 사호리)의 서해안 간선 봉수대와 녹도(鹿島)·오로봉·망해정 봉수대로 이어지는 오천수영 간선 봉수대가 있다.

또한, 역으로는 청연역(靑淵驛, 관산리)과 남전역(藍田驛, 창암리)이 있으며, 원에는 청라원(靑蘿院, 나원리)· 보원(寶院)·갈두원(葛頭院, 대관동 갈머리)·남천원(藍川院, 창암리 창촌)·횡천원(橫川院, 개화리)·위수현원(渭水峴院, 장현리 명대)이 있었다.

불교문화재로는 통일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성주면 성주사지(사적, 1984년 지정)를 비롯해 구룡사지(九龍寺址)·한산사지(寒山寺址)·양기리 사지(陽基里寺址)·동리 사지(洞里寺址)·남계리 사지(南溪里寺址)·청룡사지(靑龍寺址)·도흥리 사지(都興里寺址)·동산사지(東山寺址)·용수리 사지(龍水里寺址)·호접사지(蝴蝶寺址)등이 있다.

또, 벽남동 사지(碧南洞寺址)·관창리 사지(寬倉里寺址)·사호리 사지(沙湖里寺址)·나원리 사지(蘿院里寺址)·옥계리 사지(玉溪里寺址)·성연리 사지(聖淵里寺址)·화산동 사지·요암동사지와 읍내리 미륵터 그리고 선림사(禪林寺)·단원사(團圓寺) 등이 있다.

특히, 성주면에는 보령 백운사 부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가 있고, 성주사지에는 성주사 낭혜화상탑비(국보, 1962년 지정)·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성주사지 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성주사지 석계단(충청남도문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이 있는데, 금당 뒤에 3기의 석탑이 서 있는 구조가 특이하다.

이 밖에 웅천읍의 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주포면의 보령리 오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내항동의 대천 왕대사 마애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미산면 용수리의 보령 금강암 석불 및 비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주포면 보령리에 보령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남포면 옥동리에 남포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오천면 교성리에 오천향교 대성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고, 서원으로는 청라면 장산리에 화암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다.

사우로는 주희와 송시열을 모신 집성당(集成堂), 고려 말의 문신 이숭인(李崇仁)을 모신 토창사(土昌祠), 고려조의 명신 염제신(廉悌臣)과 염국보(廉國寶) 부자의 위패를 모신 미산면 용수리의 수현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고려 말의 명신 이제현의 위패를 모신 용암영당(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또, 조선 중종 때의 문신 김극성(金克成)의 위패를 모신 청소면 재정리의 광성부원군 사우(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고려 때의 성리학자 백이정을 모신 옥산사(玉山祠), 경순왕영모전(永慕殿)·경모전(敬慕殿), 조선 태종 때의 문신 윤자운(尹子雲)을 모신 추모사(追慕祠), 중종반정의 공신 이기(李蘷)의 사우 등이 있다.

관아 건물로는 남포면 읍내리의 보령 관아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남포관아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이 있다.

청라면 장현리 의 신경섭 가옥(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천북면 신죽리의 편무성 가옥(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 남포면 월전리의 최고운 유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대천동의 보령 경찰서 망루(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청소면 재정리 의 김좌진장군묘(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 주교면 고정리의 이지함선생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2년 지정), 청소면 죽림리의 원홍주등육군상무사단제비(중요민속문화재, 1973년 지정)·선고인합동위령비(중요민속문화재, 1973년 지정)·반수정건모한식제답기증기념비(중요민속문화재, 1973년 지정), 오천면 소성리의 보령 유격장군 청덕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의 문화재로는 주포면 송학리에 죽도앞바다 보령 죽도 해저유물 매장해역(사적, 1987년 지정), 동대동의 대천 한내돌다리(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92년 지정), 청라면의 보령 남포벼루제작(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87년 지정)이 있다.

오천면에 외연도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보령 장현리 귀학송(충청남도 기념물, 2002년 지정)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남포향교·보령향교·오천향교·화암서원 등이 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때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나, 지금은 남포면 옥동리에 있다. 보령향교는 1723년(경종 3)에 주포면 보령리에 창건되어 1868년(고종 5), 1964·1967년에 각각 중수되었다. 오천향교는 1901년에 오천면 교성리에서 충청도수군절도사영이 폐지되고 오천군이 새로 생기면서 창건되었다.

청라면 장산리 에 있는 화암서원은 1610년에 설립되었다가 1871년에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된 것을 1920년에 토정이지함의 후손들이 재건한 것이다. 신안서원(新安書院)도 있었으나, 1871년에 훼철되었다.

향교와 서원 이외도 많은 서당들이 세워져, 1910년대에는 84개 정도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주포면 관산리에 있었던 관산서당(舘山書堂)은 학생수가 130∼140여 명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5년에 남포면 읍내리에 최초로 남포학교가 설립되어, 1911년남포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이에 1911년에 주포공립보통학교, 1913년에 오천공립보통학교 등이 각각 설립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중등교육기관들이 설립되었는데, 1936년에 설립된 주산농업실수학교(珠山農業實修學校)가 최초이다. 이 학교는 1944년에 2년제의 여자농업전수학교가 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주산공립초급중학교, 주산중학교, 주산농업고등학교로 변천하다가 주산산업고등학교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1944년에 설립된 2년제의 대천공립농업실수학교(大川公立農業實修學校)는 광복 후 대천공립초급중학교, 6년제의 대천공립농업중학교가 되었다가 다시 대천공립농업고등학교, 대천고등학교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9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6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으며, 아주자동차대학이 있다.

사회·문화 시설로는 충남청소년야영장, 웅천도서관, 보령도서관, 보령시 공공도서관 등이 있다. 대천문화원이 있으며, 그 밖에 신문사, 복지회관, 실내체육관, 종합경기장 등이 있다.

민속

이 고장의 주요 민속놀이로는 장고도의 등바루놀이와 등불써기놀이가 있다. 등바루놀이는 음력 3월 하순부터 4월 상순 사이의 조금 때 15세 이상의 처녀들이 행하는 어물채취 경연을 겸한 놀이이다.

등바루 전날 처녀들은 남성들이 보지 못하도록 작은 돌들을 주워다가 10m 남짓의 둘레에 2m 정도 높이로 둥근 돌담을 쌓는다. 바다를 향한 쪽에는 1m 정도의 출입구를 뚫고, 돌담 안의 바닥에는 자디잔 조약돌을 깔아놓는다. 놀이 날에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이곳에 모여서 두 편으로 갈라 굴·대합 등 어패류의 채취시합을 4∼5시간 정도 벌인다. 이 시합에서 어패류를 가장 많이 채취한 사람이 여왕이 되어 행사를 주관한다.

처녀들이 집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농악을 울리면서 한바탕 놀게 되는데, 이때 남성들의 접근은 금지된다. 놀이는 밤 9∼10시까지 계속되다가 노래와 춤을 추며 마을에 당도하면, 집에 남아 있던 부녀자들이 나와 한데 어울려 자정이 넘어서야 끝난다.

장고도의 어린이들은 음력 섣달그믐에 풍어제로 등불써기놀이를 한다. 20여 명의 소년들이 제각기 만든 등을 들고 “등하 등하……”의 노래를 부르며 대동우물로 와서 원형으로 늘어서면 대장이 우물에 절을 하고, “뚫어라 뚫어라 물구멍만 뚫어라.”고 주문을 외우며 우물을 돌아 나간다.

그리고 집집마다 돌며 떡을 얻어 동산에 올라 제를 지낸다. 이 때 대장이 “연평도 고기 기때는 다 모여라.”고 소리치면 소년들은 조기들이 모여드는 흉내를 낸다. 제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떡을 나누어먹으며, 가난한 집에 떡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이 놀이는 끝이 난다.

이 고장의 대부분 지역에서 동제를 지내는데, 그 중에서도 오천면의 원산도·효자도·장고도·외연도·녹도 등지의 당제는 아직도 옛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어서 주목을 끈다. 이 밖에 특별한 것으로는 외연도의 전횡장군제(田橫將軍祭)·진대서낭제·용왕제, 원산도의 지황제·서낭제 등이 있다.

오천면 원산도리 반촌에서는 음력 1월 3일에 당산할머니를 모시는 당제를 당집에서 지낸다. 제주는 제일 보름 전쯤에 생기복덕한 남자로 선정하며, 제물의 구입은 따로 선정된 ‘당장모’가 거래가 있기 전 일찍 집에 나가서 가격이나 품질에 대한 시비를 하지 않고 사온다.

제일에는 밤 10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제를 지낸 뒤 하산하면 주민들이 제주집에 모여 음복하고 동회의를 한다. 금기일 동안에 산고가 예상되는 부인들은 미리 다른 마을로 피신했다가 제가 끝난 뒤에 돌아온다.

외연도에서는 중국 제(齊)나라가 망하게 되자 의로운 군사 500명을 이끌고 이곳에 정착했다는 전횡이라는 장군신을 봉안하고 4월에 제를 지낸다. 초야에는 산신제, 자정이 되면 전횡장군제를 올린다

그런 다음 하산길에 옛날 제물을 훔쳐 먹고 즉사했다는 총각 김서방의 원혼을 위해 음식·술 등을 따로 차려놓고 해변의 방파제 끝에 이르러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제가 끝나면 김밥 세 덩이를 바다에 던지는 의식을 행하고 모든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온종일 먹고 마시는 파제에 들어가는 것으로 제가 끝난다.

설화·민요

이 고장은 효자·효녀 설화, 자연물과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 지명유래담 등이 풍부하게 전한다. 효자 이야기로는 「호랑이황팔도전설」을 들 수 있다. 어떤 가난한 효자선비가 천 마리분의 개의 간을 고아주어야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현몽계시에 따라 주문을 외워 밤에만 호랑이로 변하여 각지로 다니면서 개를 잡아다 간을 내어 어머니 병구완을 지성으로 하였다.

드디어 마지막 한 마리만을 남겨놓게 되었는데, 남편이 호랑이로 변신하여 개를 잡으러 간 사이에 아내가 엉겁결에 주문책을 아궁이에 넣어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불행하게도 그는 사람으로 변신하지도,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지도 못한 채 한을 이기지 못하여 산야를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람까지 해치게 되었고 결국 관의 포수들에게 사살되어 처절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이처럼 높은 흥미성으로 인해 진원지인 이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의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승되고 있다.

조선시대 기인(奇人)의 인물담으로는 유명한 「이지함전설」이 있다. 이지함은 조상의 묘를 좋은 데 쓰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린 뒤 성주산 팔모란[八牡丹]명당을 찾아 나섰으나 비범한 지술(地術)을 가졌음에도 산신의 도움을 얻지 못하여 결국 명당을 찾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 지역에는 신라의 최치원과 연관된 전설이 다수 전한다. 최치원이 한때 대천 앞바다의 한 섬에서 논 적이 있는데, 자정만 되면 반석 위의 바위를 저절로 회전하게 해놓고는 그곳을 떠나면서 “이 바위가 회전을 멈추는 날이 내가 생명을 마치는 날”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바위 이름이 자마석(自磨石)이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조카의 반심(叛心)을 미리 알아 이를 바로잡음으로써 조카의 정치적 횡액을 면할 수 있게 했다거나, 자신을 따라다니는 제자보다 오히려 지술이 뒤졌다거나, 자신의 도술을 과신했다가 도리어 소금장수한테 무안을 당한 일도 있다는 등 그와 관련된 일화는 아주 다양하게 전해진다.

또한, 무식한 어부의 행운담인 「오진사전설(吳進士傳說)」과 ‘궉’ 하고 울며 날아가는 새 울음소리로 사성(賜姓: 임금이 공신 등에게 女性을 내려주던 일)되었다는 궉(鴌)씨의 유래담도 전해 온다.

한편, 천북면 사호리의 황금샘에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긴 아들 설화가 전한다. 아흔아홉 살까지 장수한 한 노인이 죽기 전에 아들에게 시신을 마을 우물 밑에 묻으면 부자가 될 터이나 절대 발설하지 말라 하였다. 우물을 마실 때마다 아버지 생각을 하던 아들은 몇 해 뒤 어머니에게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소문은 온 동네에 퍼지고 사람들은 시체가 썩은 물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여 우물을 파내기 시작하였다.

우물물을 다 퍼내고 바닥의 흙을 한 삽 떠내니 시체 대신 금송아지가 보이는 것이었다. 드디어 아랫부분까지 파내자 금송아지는 진흙빛 흙으로 변하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천하의 명당을 얻어놓고도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해서 부자가 되지 못한 아들의 한이 서린 이 샘을 황금샘이라 불렀다고 한다.

양항리에는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주인집의 우환을 막아준 충견들의 설화가 전한다. 이 마을에 살던 자린고비처럼 인색한 부자의 집에는 해마다 집안 식구가 원인 모르게 죽어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부자에게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딸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개를 기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는 부엌에서 솥뚜껑 여는 소리가 나면 부엌으로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았고 밥을 퍼서 밥상에 놓으면 밥상을 넘어 다녔다. 귀찮아진 아낙들이 밥을 펄 때 부엌문을 잠가놓자 개는 부엌문 쪽으로 와 울부짖었다. 개가 너무 먹을 것을 밝힌다고 생각한 아낙네들은 개를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말았다. 개는 죽으면서도 “대들보, 대들보” 하며 외쳤다.

서운해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는 다시 다른 개를 사다 주었다. 이번에도 개는 부엌에 들어와 밥상을 넘어 다녔으므로 또다시 죽이고 말았는데, 역시 “대들보”라고 외치면서 죽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아버지가 대들보 위에 올라가 보니 큰 지네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몽동이로 때리자 지네는 검은 독기를 뿜으면서 죽었다.

그러니까 지네가 대들보 위에서 밥그릇 쪽으로 독기를 뿜어 그 밥을 먹은 사람은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억울하게 죽은 개는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고, 지네는 개 무덤 앞에서 불에 태워 재를 만들었다. 그 뒤부터 밥을 펄 때는 꼭 상보를 덮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 밖에 병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식을 약으로 달여 병을 구완했는데, 알고 보니 아들을 죽인 것이 아니고 동삼을 끓여 병을 낫게 한 것이라는 「성주산의 효자설화」, 평생 고생하며 키워온 양자들에게 구박받다가 죽었다는 「할매고개설화」가 전해온다.

또, 도깨비를 속여 논에 돌 대신 쇠똥을 붓게 하여 기름진 논으로 만들었다는 「전마을설화」, 공사가 진척이 안 되어 고생을 하다가 승려를 산 채로 묻어 넣고 비로소 완공을 보았다는 「원안둑설화」 등의 많은 설화가 전한다.

이 지역에 구전되는 민요는 노동요보다 타령류의 비기능요가 중심을 이룬다. 노동요로는 농업노동요와 어업노동요가 일부 전승되는데 종류나 양이 적다. 농업노동요로는 ‘얼럴럴 상사듸어’라는 여음을 사용하는 「모심기노래」와 ‘에야―헤’라는 여음을 사용하는 「보리타작노래」가 선후창으로 불린다.

어업노동요로는 노젓는 노래와 만선으로 귀항할 때의 노래가 장고도리에 전승되며 가창방식은 선후창이다. “(앞소리) 위선영평 다벌어먹고/ 어영도바다는 돌실러갔노라. (뒷소리) 에 헤이헤이 에헤여―어―허―허요/ 좋다. (앞소리) 연평바다로 드는 조구/ 양주만남기고 다 잡아실었구나.……”라는 「만선노래」는 뒷소리가 앞소리의 두 배나 되며 ‘좋다’라는 조흥구가 삽입되는 것으로, 부를 때 악기가 동원되기도 한다.

이 밖의 노동요로는 “에―에 헤이에야 에헤이에야 듸여라 산안이라.”라는 긴 여음으로 부르는 「나무꾼노래」가 있으며, 진행 속도에 따라 여음을 달리하는 「상여노래」도 전승된다.

여성노동요로는 「베틀노래」·「시집살이노래」 등 각종 여성노동과 결부된 것이 있으나 대부분이 노동현장과 유리되어 유흥에 부응된다. “꼬댁꼬댁 꼬댁각시/ 한살먹어 어미죽고/ 두살먹어 아비죽어/ 삼촌집에 찾아가니/ 삼촌이 딜이차고/ 숙모는 내어차고/ 밥이라고 주는것이…….”라는 「꼬댁각시노래」는 어려서 설움받고 시집 가서도 불행하여 결국은 죽게 된다는 비극적인 여성의 삶을 노래한 것으로 두루 불리고 있다.

또한, 서사적인 내용을 갖춘 자탄가류도 많이 불린다. 「8·15해방가」라고도 하는 「자탄가」는 광복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그리는 노래로 시대의 애환을 반영하고 있다.

순수한 비기능요로는 경기잡가류가 많이 불린다. 특히,“정월이라 대보름은/ 닥(답)교허느은 명절인데/ 나암녀청춘은 서로모아/ 임과같이 놀건마는/ 우리낭군은 어디를 각(갔)기에/ 닥교허잔말이 왜없느냐.……”처럼 월령체로 엮은 「달거리 창부타령」이 성행한다.

「흥타령」·「담방구타령」·「장타령」·「언문뒤풀이」 등도 많이 불리지만, “백두산석은 마도진이요/ 두만강 장수는 음마무라…….”와 같이 한시를 사설로 한 「남이장군」이나 「연밥따는 처녀」 등 여러 가지 사설을 「노랫가락」에 얹어 부르는 것도 성행한다. 이 밖에 장고도리에서는 ‘등바루놀이’라는 민속놀이를 할 때 「달아달아」·「이가지 저가지」 등 여러 가지 노래를 특이한 곡조로 부르기도 한다.

산업·교통

산업은 농업·수산업·광업 등이 주를 이룬다. 농업은 논농사가 대부분이며, 청천저수지(靑川貯水池)·성연저수지(聖淵貯水池)·진죽저수지(眞竹貯水池) 등이 관개용 수원이 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저마·대마·과일 등으로, 쌀은 서부 평야지대에서, 그 밖의 작물들은 동부 산지에서 주로 생산된다.

수산업은 죽도와 녹도를 중심으로 조기·갈치·새우·조개류 등을 많이 어획·채취하고, 양식업으로는 패류와 해조류가 주종을 이루며, 제염업도 활발하다. 성주산·옥마산 일대의 보령탄전에서는 저질탄인 무연탄이 1950년대 말경부터 채굴되어 1980년대 중반에는 연간 채탄량이 150만 톤을 넘었다.

이러한 석탄산업은 대천의 경제를 크게 떠받쳐주었다. 그러나 탄층이 심부화하고 매장량의 잔량이 현저히 줄어들어 폐광되는 탄광이 늘어나던 중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의 시행으로 모든 탄광이 문을 닫고 말았다. 대천에서 성주터널을 넘어가면 웅천천 상류가 나오고, 거기서 성주산으로 뻗어 올라간 골짜기에 성주리를 중심으로 한 보령탄전의 최대 탄광취락이 발달해 있다.

이 밖에 석면이 오천면에서, 규사가 원산도와 삽시도에서 생산되고 있다. 또한, 웅천면·남포면·미산면 일대에서는 남포오석이 생산되어 상석·비석·석상·건축자재와 문패·벼루·화병 등의 석공예품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상업활동은 웅천의 상설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5일 정기장이다. 1830년대에는 주포면 보령리의 읍내장이 1·6일, 오천면 소성리의 수영장(水營場)이 2·7일에 열렸으며, 이 밖에도 웅천장과 간치장(艮峙場)이 있었다. 그 뒤 1940년부터 웅천장·간치장·청소장이 부각되어, 곡물·어류·모시·벼룻돌 등이 거래되었다. 현재는 웅천장(일반시장)과 오천장(정기시장) 등이 열려 어패류와 청과류가 주로 거래되고 있으나, 시내의 대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교통은 대천 등을 중심으로 홍성군 광천읍과 서천군 비인면으로 향하는 남북 방향의 21번 국도가 청양군 화성면으로 향하는 36번 국도와 교차하고 있고, 606번·612번·619번 등의 지방도가 이들 국도와 지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또한, 21번 국도와 거의 평행하게 달리는 장항선 철도에는 진죽·주포·주교·대천·남포·옥서·웅천·간치·주산 등의 요역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시내 및 시외 교통이 아주 편리하다.

남포와 옥마 간에는 석탄 수송을 위한 남포선이 개설되어 있다. 여기에다 서해안고속국도가 21번 국도와 장항선 철도의 서편에 인접해 건설되고, 대천인터체인지와 주산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고속도로에 접근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한편, 대천항은 근해의 고파도·가의도·효자도·원산도·삽시도·장고도·고대도·호도·녹도·외연도·안면도 등지로 향하는 정기·부정기 선박의 출발 및 기항지로서 일대 해상 교통의 중심지이다. 따라서, 보령시는 도로, 철도 및 해상 교통이 고루 발달한 교통의 요충을 이루고 있다.

관광

서해안에 면한 이 시는 해안경관이 아름답고 유서 깊은 유적지가 많아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신라시대의 사지로 유명한 성주면 성주리성주사지에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성주사지 서 삼층석탑·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 등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남포면 에는 남포읍성·진서루·최고운 유적 등이 있고, 이 밖에 곳곳에 많은 역사유물들이 남아 있다. 또한, 오천면 외연도리에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의 울창한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해안관광지로는 신흑동의 대천해수욕장, 웅천면의 무창포해수욕장, 오천면의 원산도해수욕장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 해수욕장은 백사장의 모래질이 좋고 울창한 송림이 바다와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숙박시설 및 부대시설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 특히, 대천해수욕장은 최근 개발이 집중되고 있고, 또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어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읍·면
  1. 웅천읍(熊川邑)

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62.10㎢, 인구 7,00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대창리이다. 본래 남포군 지역으로 웅천의 이름을 따서 웅천면이라 하여 관동·당현·간입 등 1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읍면(古邑面)의 대천 등 8개 리와 신암면(新巖面)의 두명리, 습의면(習衣面)의 벽동리, 심정면의 동막리를 병합해 13개 리로 개편하였다.

면내의 남쪽과 중앙부는 차령산맥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화락산(花落山, 200m)·봉화산·잔미산(殘尾山, 417m) 등이 있어서 산지를 이루며, 동부에는 웅천천을 중심으로 사평들·대창들·노천들 등이 있고 서부 해안지역에도 평야가 발달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 등과 딸기 재배가 활발하다. 그리고 관당리·독산리 등 도서지방에서는 바지락이 많이 채취된다. 제조업으로 남포석의 석공예 가공공장이 30여 개소가 있으며, 갈포벽지와 낚싯대 제조공장 등도 있다. 관당리에 있는 무창포해수욕장에는 여름철 많은 피서객이 모여들고 있다.

교통은 면의 중앙부를 국도가 지나고 장항선 철도의 주요역인 웅천역이 있어서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수부리에 단원사의 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와 부도, 성주산성 등이 있으며, 구룡리의 백제고분에서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 평리에 사당인 옥산사가 있다.

대창리(大昌里)·수부리(水芙里)·성동리(城洞里)·평리(坪里)·대천리(大川里)·두룡리(杜龍里)·구룡리(九龍里)·관당리(冠堂里)·독산리(獨山里)·소황리(所篁里)·황교리(篁橋里)·죽청리(竹淸里)·노천리(盧川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남포면(藍浦面)

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9.49㎢, 인구 5,55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서리이다. 본래 남포군의 소재지이므로 현내면(縣內面)이라 하다가 1895년에 군내면이 되어 중리·남리·동리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안면의 야동 등 17개 리, 북내면의 옹곡 등 16개 리와 보령군의 일부를 병합해 13개 리로 개편하면서 남포면이 되었다.

동부에는 옥마산(玉馬山, 602m) 등이 솟아 있어 산지를 이루나 그 밖의 대부분 지역은 평지이며 중앙에 남포저수지가 있어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주요 산업은 농업 중심의 논농사를 주로 하며, 월전리 등의 도서에서는 미역과 백합의 양식이 활발하다.

특히, 인접한 웅천면·미산면과 더불어 남포석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남포석은 청석(靑石)과 오석(烏石)의 두 가지가 있으며, 품질이 강견하고 풍우에 강하여 상석·비석·석상·건축자재·문패·벼루·화병·완구 등으로 가공되어 이용된다. 교통은 장항선 철도와 국도가 병행하여 면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옥마까지는 옥마선이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옥동리에 남포향교, 읍내리에 남포관아문·남포읍성, 신흥리에 신안서원, 월전리에 최고운 유적이 있다. 읍내리(邑內里)·옥동리(玉東里)·창동리(倉洞里)·봉덕리(鳳德里)·제석리(帝釋里)·삼현리(三賢里)·소송리(巢松里)·옥서리(玉西里)·달산리(達山里)·신흥리(新興里)·양항리(陽項里)·양기리(陽基里)·월전리(月田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미산면(嵋山面)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53㎢, 인구 2,01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내평리이다. 본래 남포군 지역으로 북외면(北外面)이라 하여 성주·조계·상개 등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심전면(深田面)의 거문 등 28개 리와 홍산면·서면의 일부를 병합해 16개 리로 개편하면서 미산면이 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로 성주산·아미산·옥마산·만수산(萬壽山, 432m)·백월산(白月山, 560m)·동달산(東達山, 395m)·월명산·운봉산(雲峰山, 337m)·양각산(兩角山, 467m)·옥녀봉(玉女峰, 368m) 등이 솟아 있으며, 평야는 웅천천의 지류 유역에 약간 발달해 있을 뿐이다.

주요 산업은 광업으로 25개의 탄광이 대부분 성주리와 도화담리에 집중해 있고, 주민의 약 30%가 광공업에 종사한다. 교통은 지방도가 면의 서부를 지나고 있을 뿐이어서 다소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용수리에 수현사와 용암영당이 있다. 평라리(平羅里)·도화담리(桃花潭里)·풍계리(豊溪里)·용수리(龍水里)·늑전리(勒田里)·도흥리(都興里)·봉성리(鳳城里)·옥현리(玉峴里)·은현리(隱峴里)·내평리(內坪里)·삼계리(三溪里)·대농리(大農里)·풍산리(豊山里)·남심리(南深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성주면(聖住面)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0.91㎢, 인구 2,70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주리이다. 본래 백제의 신촌현에 속했다가 신라 때는 웅천주결성현신읍 지역이 되었고, 고려 때는 하남도보령현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남포현 지역이 되었다가 남포군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외면과 심전면을 통합해 미산면 지역이 되었으며, 1970년미산면성주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6년성주출장소가 성주면으로 승격하였다.

성주산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산간지역이며, 면의 중앙으로 성주천이 흐른다. 지하자원으로 무연탄이 채굴되었으나, 지금은 폐광되었다. 자연석으로 오석이 많이 채석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의 곡물이며, 채소·인삼 등도 재배된다. 교통은 국도가 지나고 이 밖에도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성주리의 성주사지에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성주사지 오층석탑·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성주사지 서 삼층석탑·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성주사지 석등·성주사지 석계단 등이 있다. 성주리(聖住里)·개화리(開花里) 등 2개 리가 있다.

  1. 오천면(鰲川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42㎢, 인구 5,39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소성리이다. 본래 오천군 지역으로 오천 동쪽이 되므로 천동면(川東面)이라 하여 군서·군동 등 2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남면의 효자도·육도 등 24개 리와 하서면의 18개 리, 보령군 장척면의 2개 리를 병합, 10개 리로 개편하면서 오천면이 되었다.

면 전체가 100m 내외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20여 개의 유인도와 48개의 무인도가 속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주곡과 고구마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원산도·삽시도·효자도·녹도·외연도 등에서는 굴·해삼·홍합·멸치 등이 채취 또는 어획되며, 섬의 초지를 이용해 토끼 사육도 행해지고 있다.

또한, 해안에서는 천일염도 생산되며, 부두가 있으나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하여 양항(良港)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교통은 지방도가 면의 북부를 통과할 뿐 불편하며, 섬에는 군의 행정선이 주 2회 운항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소성리에 오천성·아현산성·수군절도사영성, 교성리에 오천향교 대성전과 삼층석탑, 갈현리에 고분군, 원산도리·녹도리·삽시도리·외연도리에 조개더미 등이 있고, 외연도리에는 천연기념물인 외연도의 상록수림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 오천에 수사영이 있을 때 선정된 한산사(寒山寺)·고소대(姑蘇臺)·구양루(丘陽樓)·황학루(黃鶴樓)·상사봉(相思峰)·오로봉·영보정(永保亭)·선림사 등은 오천8경으로 유명하다.

소성리(蘇城里)·영보리(永保里)·교성리(校成里)·갈현리(葛峴里)·오포리(烏浦里)·효자도리(孝子島里)·원산도리(元山島里)·삽시도리(揷矢島里)·녹도리(鹿島里)·외연도리(外煙島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주교면(舟橋面)

시의 중서부에 위치하고 해안에 연해 있는 면. 면적 36.40㎢, 인구 5,58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주교리이다. 본래 보령군 주포면 지역이었으나, 1971년에 주교·은포·송학·고정·관창·신대리를 중심으로 주교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9년에는 주교면으로 승격하였다.

동부에 봉황산(鳳凰山, 259m), 서부에 봉대산(奉大山, 229m)이 있고, 이들 산지 사이를 주교천이 남북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주교천 연변에는 퇴적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해안에는 간척사업으로 넓은 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잎담배 등의 재배가 활발하며, 해안에서는 김 양식도 한다.

교통은 장항선 철도가 주교역을 거쳐 면의 중앙부를 남북 방향으로 통과하며 21번 국도가 철도와 나란히 지니고 있어서 편리하다. 면의 남부가 보령시내와 접하고 있어서 중심지로의 접근이 용이하다.

서해안고속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지나고 있으나, 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 송학도(松鶴島)는 제방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고정리에 이지함묘·이산해묘, 관창리에 고인돌군 등이 있다. 주교리(舟橋里)·은포리(隱浦里)·송학리(松鶴里)·고정리(高亭里)·관창리(寬倉里)·신대리(新垈里) 등 6개 리가 있다.

  1. 주산면(珠山面)

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0.77㎢, 인구 2,69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야룡리이다. 본래 남포군 습의면 지역으로 심동·농암 등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벽동리는 웅천면에 이속시키고, 불은면(佛恩面)의 동막 등 16개 리와 심전면의 평장리(平章里) 일부를 병합, 주령산의 이름을 따서 주산면으로 개편하고 보령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주변부는 산지이나, 중앙에는 삼곡들을 비롯한 분지상의 평야가 발달해 있고, 남서부에는 해안 간척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쌀·보리 중심의 주곡농업이며, 해안에서는 약간의 천일염이 생산된다.

교통은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지나 서천으로 연결되고, 간치역(間峙驛)과 주산역(珠山驛)을 지나는 장항선 철도가 통과하고 있어서 매우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주야리와 유곡리에 산성이 있으며, 창암리에서는 백제시대의 토광묘가 발굴되었다. 그 밖에 동오리와 삼곡리에는 남방식 고인돌이 있다.

금암리(金巖里)·야룡리(野龍里)·주야리(珠野里)·신구리(新九里)·유곡리(柳谷里)·증산리(甑山里)·창암리(倉巖里)·화평리(花坪里)·동오리(東五里)·삼곡리(三谷里)·황률리(篁栗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주포면(周浦面)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20㎢, 인구 1,84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보령리이다. 본래 보령군 주포면 지역으로 한서·마동 등 2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척면(長尺面)의 7개 리와 목충면의 14개 리, 오천군 천동면의 산수동 일부를 병합해 10개 리로 개편하였다.

1962년에 신성리를 보령리로 개칭했으며, 오천면 갈현리 일부가 연지리로 개칭되면서 이 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에 주교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9년에 주교출장소가 주교면으로 승격하면서 주교·은포·송학·고정·관창·신대리가 분리되었다.

동부에 진당산(鎭堂山, 351m)이 솟아 있어 산지를 이루며, 서부를 흐르는 주교천을 중심으로 평야가 발달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 등의 주곡 생산이 많고, 잎담배 재배도 활발하다.

교통은 장항선 철도가 주포역(周浦驛)을 거쳐 면의 중앙을 남북 방향으로 통과하며, 121번 국도가 철도와 나란히 중앙부를 지나고 있어서 편리하다. 서해안고속국도가 면의 서부지역을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보령리에 오층석탑·보령관아문·보령성곽·보령향교, 봉당리에 백제시대의 토성인 고남산성이 있다. 보령리(保寧里)·마강리(馬江里)·봉당리(鳳堂里)·관산리(館山里)·연지리(連芝里) 등 5개 리가 있다.

  1. 천북면(川北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 인구 3,88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만리이다. 본래 홍주군 용천면(用川面) 지역으로, 1901년오천군에 편입되어 오천 북쪽이 되므로 천북면이라 하여 상신(上新)·하신(下新)·명곡(明谷) 등 5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결성군 가산면(加山面)의 6개 리를 병합, 8개 리로 개편하였다.

면의 전지역이 100m 내외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어서 평지는 많지 않으나 중동부에는 오성들, 남동부에는 천수만을 간척하여 조성된 신현들 등의 농경지가 있고, 아직도 간척가능지가 많다. 잎담배가 군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며, 면내에 학성광산(鶴城鑛山)·만리광산(萬里鑛山)·보령광산(保寧鑛山) 등이 있어 금·은·동 등을 각각 채굴한다.

교통은 면의 중앙을 지방도가 동서로 통과하여 광천·대천 등지와 연결되고 있으며, 철도와 국도에서 조금 떨어진 관계로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학성리에 폐사지(廢寺址)가 있다. 하만리(河滿里)·학성리(鶴城里)·사호리(沙湖里)·장은리(長隱里)·궁포리(弓浦里)·낙동리(洛東里)·신덕리(新德里)·신죽리(新竹里) 등 8개 리가 있다.

  1. 청라면(靑蘿面)

시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9.82㎢, 인구 4,33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라원리이다. 본래 보령군 지역으로 산에 칡과 댕이가 많다 하여 청라면이라 하고 임천·분향·창대 등 3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삼전면(吾三田面)의 시궁·옥계 등 24개 이를 병합해 11개 리로 개편되었다.

오서산·진당산·성태산(星台山, 624m)·문봉산(文奉山, 600m)·백월산 등이 남쪽과 북쪽의 면계에 솟아 있어 남부와 북부는 험한 산세를 보이나,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대천천을 끼고 넓은 평지가 발달해 있다. 남서부에 청천저수지가 있어서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주요 산업은 쌀농사 중심의 농업이다. 나원리·소양리·의평리 일대의 탄광에서는 석탄이 많이 채굴되고, 양지리광산·태영광산·황룡광산 등지에서는 금·은이 채취되고 있다. 교통은 면의 남부를 국도가 동서로 가로질러 대천·청양 등지와 연결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장산리에 진당산성과 화암서원, 향천리에 산성이 남아 있고, 장현리에 귀학정(歸鶴亭)이 있다. 나원리(蘿院里)·소양리(昭陽里)·내현리(內峴里)·의평리(蟻坪里)·향천리(香泉里)·장산리(長山里)·옥계리(玉溪里)·황룡리(黃龍里)·신산리(新山里)·음현리(奄峴里)·장현리(長峴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청소면(靑所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45㎢, 인구 3,01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진죽리이다. 본래 보령군 지역으로 청소산 밑이 되므로 청소면이라 하여 의식·도원 등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척면의 중리·신리 등 20개 리와 오천군 천동면 석현리(石峴里) 일부를 병합, 8개 리로 개편하였다.

동부에 오서산·아차산(峨嵯山, 424m) 등의 험한 산이 솟아 있어 산지를 이루며, 서부는 진죽천(眞竹川) 일대에 충적지가 형성되어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쌀 등의 주곡이며, 잎담배와 누에고치 생산은 군내에서 2위를 나타낸다. 천수만 일대의 연안에서는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으며, 석면·냉동·김가공 등의 제조업이 행하여지고 있다.

교통은 면의 중앙부를 국도가 지나고, 장항선 철도의 진죽역과 원죽역(源竹驛)이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성연리에 오서산성, 재정리에 김좌진장군묘와 광성부원군의 사우가 있다.

진죽리(眞竹里)·신송리(新松里)·재정리(才井里)·야현리(野峴里)·장곡리(長谷里)·죽림리(竹林里)·성연리(聖淵里)·정전리(井田里) 등 8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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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지방행정구역요람』(내무부, 1996)
『한국지리』지방편(권혁재, 법문사, 1996)
『우리고장 충남·환경과 역사·』(충청남도교육위원회, 1986)
『한국지지』지방편Ⅱ(건설부국립지리원, 1984)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한국구비문학대계』4·4(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내고장 보령』(보령군, 1983)
『충청남도지』상·하(충청남도지편찬위원회, 1979)
『한국민요집』Ⅱ(임동권, 집문당, 1974)
『보령군지』(보령군지편찬위원회, 1971)
「충남서해안도서의 민속연구」(박계홍, 『백제연구』4, 1973)
보령시(http://boryeong.chungna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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