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예산군 · 당진시, 동남쪽은 홍성군, 서쪽과 북쪽은 황해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22′∼126°39′, 북위 36°36′∼37°39′에 위치한다. 면적은 740.82㎢이고, 인구는 17만 99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9개 면, 5개 행정동(14개 법정동), 264개 행정리(125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다.
태안반도(泰安半島)의 중심부인 이곳은 해발고도 50m 이하의 구릉지가 분포하는 지형이다.
동부에 가야산(伽倻山, 678m) · 상왕산(象王山, 307m), 서부에 도비산(352m) · 팔봉산(八峰山, 362m) · 연화산(235m), 남부에 삼준산(490m), 북부에 망일산(302m) 등이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소정천 · 대교천과 해미면의 궁현보천(宮峴洑川) · 해미천, 그리고 고북면의 남정리천(南井里川) 등이 있으며, 군내에서 제일 큰 하천은 운산면의 용장천(龍障川)이다. 조석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수심이 얕아서 항구의 발달은 미약하나, 전 연안에 넓게 분포한 간석지가 간척되어 농지 및 염전으로 이용되는 곳이 많다.
지질은 결정편암계(結晶片岩系)이고, 토양은 황갈색 삼림토이며, 낙엽활엽수 혼합림대에 속해 눈개비자나무 · 대나무류 · 곰솔 · 사찰나무 · 줄사철나무 · 굴피나무 · 팽나무 · 백동백나무 · 단풍나무 등이 자생한다.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같은 위도상의 동해안 지역보다 춥다. 연평균 기온 11.8℃, 1월 평균기온 -2℃, 8월 평균기온 25.6℃이며, 연 강수량은 968.2㎜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발굴된 적이 없으나 인지면의 서산 둔당리 고인돌(支石墓), 고남면 고남리 일대의 남방식 고인돌, 고북면 장요리 · 가구리의 선돌, 대산읍 대로리와 해미면 휴암리의 선사주거지가 발견되어, 청동기시대 이 지역에 사람이 많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서산 지역에 삼한시대에는 마한 치리국국(致利鞠國)이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3개의 군현이 있었는데, 여읍현(餘邑縣)은 백제의 여촌현(餘村縣)을 신라 경덕왕이 개명한 것으로 다시 여미현(餘美縣)이라 했으며 신라 혜성군(槥城郡)의 영현(領縣)이었다.
부성군(富城郡)은 백제의 기군(基郡)을 경덕왕이 개명한 것인데 890년(진성여왕 7)에는 최치원을 태수로 두었다. 지육현(地育縣)은 백제의 지육현(知六縣)을 경덕왕이 개명한 것으로 뒤에 북곡현(北谷縣)이라 하였다.
지금의 서산시는 홍주(洪州)의 속현이었던 여미현과 정해현(貞海縣) 그리고 부성현(富城縣)의 지역이었다. 여미현은 신라의 여읍현으로 1018년(현종 9)에 홍주에 내속했고, 1106년(예종 1)에 감무를 두었다.
정해현은 고려 태조 때 몽웅역(夢熊驛)의 역리(驛吏)로서 한씨 성을 가진 자가 큰 공이 있어 대광(大匡)의 호를 사하고 고구현(高丘縣)의 땅을 떼어 현을 두어 그의 관향(貫鄕)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1018년(현종 9)에 운주(雲州: 뒤에 洪州)에 내속하고 뒤에 감무를 두었다.
부성현은 신라의 부성군으로 1144년(인종 22)에 현령을 두었으나, 1182년(명종 12)에 현령과 현위가 서로 반목해 그 해가 무고한 백성에게 미치게 되자 백성들이 아문(衙門)을 폐쇄하고 위아(尉衙)의 재복(宰僕)을 살해하는 민란을 일으켜, 관호를 삭제하고 수령을 둘 수 없도록 하였다.
1284년(충렬왕 10)에 현인 대호군(大護軍) 정인경(鄭仁卿)이 왜구의 침입시 큰 공이 있어 지서산군사(知瑞山郡事)로 승격시켰다. 1308년에 다시 승격시켜 서주목(瑞州牧)으로 삼았다가 1310년(충선왕 2)에 제목을 폐지함에 따라 강등해 서령부(瑞寧府)로 삼고, 뒤에 다시 지서주사(知瑞州事)로 격하시켰다. 부성현에는 지곡현(地谷縣)과 소태현(蘇泰縣: 지금의 태안군) 두 현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지곡현은 신라의 지육현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산군과 해미현의 지역이었다. 서산군은 고려시대의 서주를 1413년(태종 13)에 서산군으로 고친 것이며, 지곡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1695년(숙종 21)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일이 생겨 강등해 현으로 삼았다가 1713년 군으로 복구하였다. 또 1733년 읍인의 역모로 강등되어 현이 되었다가 1742년(영조 18)에 다시 군으로 복구했으며, 1776년(정조 1) 현으로 강등했다가 1785년(정조 9)에 군으로 복구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초 서산의 호구는 489호, 1,887명이었다. 해미현은 1407년(태종 7)에 고려의 정해현과 여미현을 병합해 해미현으로 하고, 1413년에 현감을 두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해미의 호구는 258호, 855명이었다.
조선 전기 해미에는, 『경국대전』에 따르면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병영이 있었으며, 인조 때에는 좌영(左營)을 온양에 세웠다가 1712년(숙종 38)에 해미로 옮기고 좌영장, 즉 홍주진관병마절제도위좌영장토포사(洪州鎭管兵馬節制都尉左營將討捕使)는 현감이 겸하였다.
해미에는 1491년(성종 22)에 세운 해미읍성이 온전히 남아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성 사람들이 이 지역으로 피난 또는 낙향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예조좌랑 권득기(權得己) 한성부 좌윤 권시(權諰)부자가 있다.
1794년 12월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模)의 입국에 따른 을묘박해(乙卯迫害) 때 내포의 교도는 모두 해미 진영에서 다스리게 했는데, 이때 순교자가 100여 명에 이르렀다. 또 1811년 충청감사 원재명(元在明)의 장계에 따르면, 해미현에서 사학죄인(邪學罪人) 10여 명이 잡혔는데 그 중 15살의 박옥귀(朴玉貴)가 순교하였다.
1895년(고종 32) 해미가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태안군과 서산군 2개 군과 해미현 1개 현을 통합해 서산군이라 하고, 군청을 서산면 읍내리에 두었다. 1919년 3·1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곳에서도 3월 16일부터 4월 10일까지 수천 명의 군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였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인정(李寅正) · 송재만(宋在萬) 등이 있다. 1942년 서산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3년 서산군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1980년 서산군 안면면이 읍으로 승격했으며, 1986년 서산군 안면읍 고남출장소가 고남면으로 승격하였다. 1989년 1월 1일자로 서산읍이 서산시로, 태안읍 · 안면읍과 고남면 · 근흥면 · 남면 · 소원면 · 원북면 · 이원면 등 2개 읍, 6개 면은 태안군으로 이관되었고, 고북면 · 대산면 · 부석면 · 성연면 · 운산면 · 음암면 · 인지면 · 지곡면 · 팔봉면 · 해미면 등 10개 면은 서산군으로 개편되었다.
1991년 12월 1일 대산면이 읍으로 승격해 서산군은 1개 읍, 9개 면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서산군과 서산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서산시가 되었다.
이 지역에는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지역은 서산 석남동, 성연면 일남리, 음암면 도당리 등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해미면 휴암리, 대산읍 웅도리 유두목에 빗살무늬토기 산포지가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해미면 휴암리, 대산읍 대로리 집자리 유적과 성연면 일남리의 석관묘가 있으며, 고인돌 유적으로는 인지면의 서산 둔당리 지석묘(충청남도 기념물, 1986년 지정), 고북면 가구리의 유적이 있고, 선돌은 고북면 장요리 · 장생리 등에서 발견된다. 휴암리 유적은 1960년대 후반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했는데, 무문토기 중기의 송국리형 집자리가 나왔다.
이 밖에 중학교 향토사료실에 수집된 유물들이 있다. 대산중학교(돌도끼 · 화살촉 · 석검 · 반달칼 · 갈돌 · 갈판 · 대팻날 · 미완성 석기), 안남중학교(화살촉 · 돌도끼 · 석검 · 반달칼 · 방추차 · 기타 미완성 석기), 서산중학교(돌도끼 · 홈자귀 · 석검), 인지중학교(돌도끼), 음암중학교(화살촉 · 홈자귀 · 반달칼 · 석검 · 돌도끼 · 돌끌), 해미중학교(돌도끼 · 화살촉), 지곡중학교(돌도끼) 등에서 유물을 소장하고 있어 주변지역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고분유적은 갈산동, 고북면 장요리 · 초록리, 음암면 유계리 · 율목리, 운산면 여미리 · 고산리, 지곡면 산성리, 대산읍 대로리, 인지면 성리 · 예정리 · 남정리, 팔봉면 금학리 · 어송리 등에서 발견되는데, 시대를 알 수 없는 것이 많으나 확인된 것으로는 백제시대와 고려시대의 석곽유구가 대부분이다.
산성으로는 해미면 읍내리의 해미읍성(사적, 1963년 지정), 서산읍성, 고파도성(古波島城)이 있고, 북주산성(北主山城), 명림산성(鳴林山城), 성왕산성(聖旺山城), 율목리 산성(栗木里山城), 봉화산성(烽火山城), 번양리 산성(磻陽里山城), 연암산성(燕巖山城), 웅소성(雄梳城), 동암산성(銅巖山城), 부성산성(富城山城), 환성리 산성(環城里山城), 미륵산성, 화수리 산성(花秀里山城), 토성산성(土城山城), 진장리 산성(榛檣里山城, 또는 古城山城), 호리성(虎里城), 대사리 산성(大寺里山城)이 있다.
가마 야철지로는 오사리 청자가마를 비롯해 예천동, 칠전리 · 수평리 · 고산리 · 거성리 · 어송리 · 어송리 · 덕송리 · 금학리 · 연화리의 백자가마와 양길리 · 고산리의 기와가마를 들 수 있다. 야철지로는 남정리 · 송시리 · 도성리 · 고산리 · 수평리 · 송현리 유적이 있다. 해안이 가까워 조창(漕倉: 고려 · 조선시대에 해상으로 운반할 곡식을 쌓아 두던 곳집) 유적이 발견되는데 영풍창지, 봉생리 서창지, 창리 조창지, 명천리 조창지 등이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운산면 용현리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1962년 지정), 서산 보원사지(사적, 1987년 지정)가 있고, 보원사지에는 보원사지 석조(보물, 1963년 지정) ·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보물, 1963년 지정) ·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또 신창리의 개심사에 개심사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 · 개심사 영산회괘불탱(보물, 1997년 지정) · 개심사 명부전, 개심사 심검당, 운산면 태봉리에 문수사 극락보전 ·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해미면 황락리에 일락사 대웅전 · 일락사 철불 · 일락사 범종 · 일락사 삼층석탑, 천장사(天藏寺), 죽사(竹寺), 두우사(杜宇寺), 석천암(石泉庵), 수도암, 송덕암(頌德庵), 망일사(望日寺), 삼길사(三吉寺), 동사(東寺), 부석면 취영리에 부석사(, 동문리 사지(東門里寺址), 장요리 사지(長要里寺址), 어송리 사지(漁松里寺址), 운산면 용현리에 백암사지 등이 있다. 개심사 명부전은 1984년, 개심사 심검당은 1997년, 일락사 철불과 범종, 삼층석탑은 1984년, 부석사와 백암사지는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문수사 극락보전은 1973년, 문수사 금동여래좌상은 1974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외에도 산수리 석불입상, 번양리 석불입상, 신장리 석불입상, 여미리 석불입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석남동의 석남동 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연화리 석불입상, 황락리 석불입상, 천장사 칠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읍내리 귀부석(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동문동에 서산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해미면 오학리에 해미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가 있으며, 읍내동에 성암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인지면 애정리에 송곡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고, 지곡면 산성리에 부성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부석면 강당리에 서산 숭덕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6년 지정), 지곡면 대요리에 정충신사당(진충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다.
관아건물로는 읍내동에 서산 관아문 및 외동헌(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서산객사(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91년 지정)가 남아 있다.
음암면 유기리에 서산 경주김씨 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음암면 유계리에 정순왕후 생가(충청남도 기념물, 1988년 지정), 인지면 남정리에 서산 김두징 묘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읍내동에 윤시영선생 홍양일기(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2년 지정), 지곡면 대요리에 정충신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석림동의 승무(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69년 지정)가 있다. 경주김씨 고택은 1984년 중요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승무는 196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서산향교 · 해미향교 · 성암서원 · 송곡향현사 · 부성사 등의 향교와 서원이 있었다. 서산향교는 1406년(태종 6)에 당시 서산군성(瑞山郡城)의 서문 밖에 세웠는데, 1574년(선조 7)에 서산군수 최여림(崔汝霖)이 동문동으로 이전하였다. 해미향교는 1407년(태종 7)에 해미면 조학리에 창건하였다.
성암서원은 1695년에 동문동에서 창건해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1896년에 재건하였다. 송곡향현사는 인지면 예정리에 창건했는데,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1909년에 재건하였다. 부성사는 1921년에 지곡면 산성리에 창건하였다. 향교와 서원 이외에 서당들이 거의 자연마을마다 세워져 교육을 담당하였다.
1906년에 태안군 안면읍에 김병년(金炳秊)이 세운 사립 광영학교(廣英學校)의 영향을 받아, 이 지역에서도 1907년에 한동벽(韓東壁)이 중심이 되어 인지면 풍전리에 있는 임명재(任命宰)의 민가에 풍전학교(豊田學校)를 설립하였다.
1908년(순종 2)에 서병언(徐丙彦)과 당시 서산군수 박승준(朴承俊)의 특별한 배려로 이 학교를 당시 읍내의 여자잠업전습소(女子蠶業傳習所) 건물로 옮기고, 교명도 서령학교(瑞寧學校)로 개칭하였다. 그 뒤 1911년에 서령학교는 서산공립보통학교에 흡수되고, 서산공립보통학교는 1920년에 동문동으로 이전해 현재의 서산초등학교가 되었다.
해미에서도 당시 서산군수를 역임하다 해미군수로 전임되어 온 이기상(李基祥)이 1910년에 사립 해명학교(海明學校)를 설립했는데, 2년여 동안 유지되다가 해미공립보통학교로 흡수되어, 오늘날의 해미초등학교가 되었다.
근대적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27년에 현재의 서산여자중학교의 전신인 서산공립농업보습학교(瑞山公立農業補習學校), 1943년에 현재의 서산농공고등학교의 전신인 서산공립농림학교(瑞山公立農林學校)가 각각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8개교, 중학교 16개교, 고등학교 8개교, 특수고등학교 1개교와 한서대학교가 있다. 기타 시설로는 서산도서관, 해미도서관 및 서산문화원이 있고, 신문사, 일반공연장, 영화관이 있다.
이 고장의 중요민속놀이로는 윷놀이 · 널뛰기 · 연날리기 · 다리밟기 · 쥐불놀이 · 그네뛰기 · 돈치기 · 숨바꼭질 · 닭잡기놀이 · 볏가리놀이와 인지면 야당리에서 즐기는 인지무등농악, 대산 이북지역에서 즐기는 말먹이놀이, 음암면 탑곡리에서 즐기는 박첨지놀이(충청남도 무형문화재, 2000년 지정)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볏가리놀이는 이 고장 농민들의 전승놀이로서 음력 정월보름날 볏가리[禾竿]를 세웠다가 2월 1일 그 볏가리를 내리고 온 주민이 함께 즐기는 놀이이다. 즉, 1월 15일에 길이 세 길 정도의 긴 장대 꼭대기에 짚다발을 묶어 매고 그 아래에 벼 · 수수 · 조 등의 이삭을 매단 볏가리를 동네 마당이나 밭에 세운다.
그때 볏가리 꼭대기에 세 방향으로 세 가닥의 새끼를 늘어뜨리고 그것을 지상의 말목에 잡아매어 볏가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때 각 가정에서는 푸짐하게 차린 음식을 가지고 나와 농악을 울리며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긴다. 2월 1일이 되면 볏가리를 내리고 볏가리를 세울 때와 마찬가지로 즐긴다.
무등농악은 야당리에 전승되는 농악놀이로 1월 15일에 2층 ·3층의 무등(꽃나비)을 세우고 농악을 울리며, 마을 안의 모든 우물을 찾아 고사를 올리며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비는 데 특징이 있다.
부석면 창리에서는 1월 2일부터 3일까지 영신제(靈神祭)를 거행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경기도 이북지역에서만 임경업장군을 당신(堂神)으로 모시고 제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곳에서도 임장군(林慶業)을 제신으로 모셔 주목된다. 이 외에 운산면 용현리의 장승제, 인지면 차리의 산신제, 고북면 사기리의 해신제, 부석면 간월도리의 굴부르기 등도 각각 특징 있는 동제이다.
이 고장에 전해오는 설화로는 지명에 얽힌 것과 인물에 관한 것이 있다. 그 가운데 옥녀봉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서산읍에 사는 한 노파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옥녀라는 처녀와 그 아버지가 나타나서 부춘산봉에 가 보면 다 쓰러져가는 사당이 있는데, 그 사당을 잘 보수하고 우리 부녀를 잘 받들면 이 고장 사람들의 횡액을 막아주겠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노파가 꿈에서 깨어 산에 가보니 과연 산꼭대기에 쓰러져가는 사당이 있어, 이를 중수하고 정성껏 제사를 드렸더니 서산의 횡액이 사라졌다. 그 뒤부터 부춘산봉을 옥녀봉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옥녀봉에는 옥녀금형(玉女琴形)이라는 명당터가 있다고 하는데, 서산읍을 둘러싼 산들을 멀리서 보면 마치 선녀가 가야금을 뜯는 모양으로 생겼으며, 그 중심이 되는 곳이 옥녀봉이므로 반드시 길지(吉地)가 있다고 전한다.
그 밖에 부석면 간월도리의 간월암(看月庵)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간월암은 조선 태조 때 왕사인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세운 절인데, 무학이 이 절에서 수도를 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쳐 암자 이름이 간월암이 되었고, 이 절이 있는 섬 이름도 간월도가 되었다고 한다. 무학대사의 출생지는 인지면 모월리인데, 출생에 얽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무학이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동사에 국채(國債)가 생겨 빚을 갚을 길이 없자 피신을 하였다. 이에 현청의 사령(司令)이 그의 어머니를 대신 잡아가던 도중 갑자기 산기를 느껴 해산할 곳을 찾았으나 온 산천에 모두 눈이 쌓여 있었다. 산을 방황하던 중 마침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이 있어 그 곳에서 출산을 한 뒤 옷가지로 아기를 덮어 뉘어 놓고 현청으로 갔다.
그러자 현감은 전후 사정을 듣고 무학의 어머니를 풀어주었다. 급히 아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무학의 어머니는 큰 학이 두 날개를 펴 아기를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감격해 아이의 이름을 무학(舞鶴)이라 했고, 출생한 장소를 ‘학돌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구두쇠 어부의 딸이 돌로 변했다는 「삼봉전설」과 의상대사(義湘大師)를 짝사랑하다가 용이 되었다는 「당녀전설」이 있고, 「김좌진장군전설」 · 「옥동샘전설」 · 「칠성바위전설」 · 「장구도전설」 · 「팔학골전설」 · 「중신할머니바위전설」 · 「소탐산전설(蘇耽山傳說)」 등이 있다.
이 고장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민요로는 「모심기노래」 · 「논매기노래」 등의 농요, 「시집살이노래」와 「베틀노래」를 주축으로 한 부녀요, 「꼬리따기」를 비롯한 동요 등이 있으며, 고기잡이노래나 뱃노래 등은 거의 접할 수 없다.
대부분의 농요는 「모심기노래」의 “……천하의 대본은 농부로다/ 이 농사를 지어가지고/ 천자님께 구실도 바치고/ 그 다음에는 우리 부모님께 봉양도 하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농사가 천하의 대본이라는 내용이 강조되어 있고, 깊은 충 · 효의 내용도 아울러 담고 있다.
부녀자들이 즐겨 부르던 「시집살이노래」는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꽃보고리(바구니) 옆에끼고/ 고초밭에 들어가서/ 늙은고초 제쳐놓고/ 젊은고초 제쳐놓고/ 애동고초 따다가서/ 앞냇물에 세번씻고/ 뒷냇물에 세번씻고/…….”에서와 같은 4·4조의 정연한 대구(對句)의 반복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흥취를 일깨워 주는 특징이 있다.
한편, 이 시는 예로부터 도회지와 떨어진 벽지에 있기 때문인지 노래 속에 서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적지 않은 것도 한 특징이다. 예를 들면 “정월에 정치고/ 이월에 이앓고/ 삼월에 삼스고/……시월에 시들고/ 동짓달에 동동떠서/ 섣달에 서울간다.”는 「달풀이노래」라든지, “서울이여 연주러라/ 최판관의 딸이러라/ 하도곱다 이르길래/ 한번보자 과거보니/ 없다고서 이르길래/…….”와 같은 부요에 보이는 것처럼, 서울은 서산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상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릴 적부터 “동무야 동무야 나무가세/ 배아퍼 못가겠네/ 무슨밴가 자라밸세/ 무슨자라 업자라/ 무슨업 술―업/……/ 무슨대 왕―대/ 무슨왕 임금왕/ 무슨임금 순임금.”의 「꼬리따기」 노래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요순시절(堯舜時節)의 평화를 그리워하는 화평스러운 마음을 기려 왔다.
이 지방은 기후가 온난하고 토양이 비옥해 농업이 주산업이 되어 전체 인구의 약 39.7%가 농업에 종사한다. 총경지면적은 275.32㎢이고 이 중 논이 196.17㎢, 밭이 79.15㎢이다.
인지면의 야당리천(野堂里川)이 개앙저수지(開仰貯水池)와 송급저수지(松急貯水池)를, 지곡면의 청룡보천(靑龍洑川)이 청룡저수지를, 시내의 청지천(淸芝川)이 남원저수지(南院貯水池)와 고방저수지(高方貯水池)를 이룬다. 그리고 산수저수지 · 성암저수지 · 잠홍저수지(潛紅貯水池) 등이 주농업용수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를 비롯해 고구마 · 두류 · 참깨 · 인삼 · 무 · 배추 · 마늘 · 생강 등이며, 이 중 마늘 · 생강은 전국적인 주산지이다. 마늘은 전라남도 무안군 다음으로 많이 생산하는데, 서산육쪽마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강은 1960년대에 재배하기 시작해 전국 제일의 산지가 되었다. 인삼도 재배면적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감천배와 간척지쌀로도 유명하다.
수산물로는 갈치 · 민어 · 우럭 · 멸치 · 대하 · 농어 등의 어류와 굴을 비롯한 각종 조개류가 많이 난다. 최근에는 천수만 연안의 부석면 일대에서 서산A · B지구간척사업이 완성됨에 따라 매립지 3360여 만 평, 담수호 1300여 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의 간척지가 조성되어 기업적 농업의 신기원을 열고 있다.
또한 대산면의 해안일대에 200여 만 평의 대규모로 조성되고 있는 석유화학공업단지는 울산 · 여천에 이은 우리나라 세 번째의 규모로 이 일대를 새로운 국가적 공업중심지로 부상시키고 있다. 앞으로 대산공단에는 연간 100만 톤 규모의 수출물동량을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 부두가 건설될 예정이다.
한편, 서산A · B지구간척사업은 기업적 농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대산공업단지조성사업은 서산시 주민들의 고용창출 등 지역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나, 두 사업 모두 연안에서 이루어지던 김 · 굴 · 바지락 등의 양식업과 제염업을 쇠퇴시켰고, 생태계 변화로 인한 환경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축산업으로는 1969년부터 야산에 대대적인 초지를 조성해 우리나라 최초의 대기업 축산에 착수했고, 그 결과 현재 2개의 기업목장과 소규모의 여러 목장에서 소와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상업활동은 상설시장 및 정기시장과 슈퍼마켓을 통해 이루어진다. 서산시내의 상설시장은 일대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시내 곳곳에 산재한 많은 슈퍼마켓들은 근린상권의 거점이 되고 있다.
서산시에는 본래 서산장 · 해미장 · 부석장 · 안면장 · 원북장 · 운산장 · 고북장 · 근흥장 · 소원장 · 대산장 등 13개의 정기시장이 있었으나 중심지의 성장, 교통의 발달, 농촌지역의 인구감소 등으로 서산장과 해미장만 남고 전부 폐장되었다. 서산장은 2·7일, 해미장은 5·10일에 각각 열린다(정기시장 3개, 대형점 1개)
도로는 서산 시내를 중심으로 당진∼태안간의 32번 국도, 홍성∼태산 간의 29번 국도, 당진 · 석문 · 태안 · 남면 간의 649번 지방도 등이 교차하며, 서해안고속국도가 당진시 운산면을 지나 해미면과 고북면을 지나는데, 서산인터체인지와 해미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서 수도권과 호남권으로의 접근도가 더욱 증대되었다.
특히 서산은 태안군 일대의 안면읍과 태안읍으로 진입하는 관문으로도 중요하다. 옛날에 세미(稅米)를 운송하기 위해 항로로 이용하려던 가로림만(加露林灣)과 적돌강(積乭江)을 연결하는 가적운하(加積運河)는 자취만 남아 있다.
이 시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일부이며, 서해안 유수의 명승지와 해수욕장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고, 시내 곳곳에는 역사 및 문화유적들의 분포가 많은 편이다.
이 시에는 대체로 8개의 관광 코스가 있는데, ① 서산시 중심부의 옛 서산 관아문 및 외동헌에서 서산읍성 · 북한성 · 활성으로 가는 시내 코스, ② 서산시의 중심부에서 해미면 읍내리의 해미읍성 · 성산성 · 웅소성리의 태성산성(일명 어리성) · 황락리 일락사 · 병인년 천주교 순교성지에 이르는 코스, ③ 서산시의 중심부에서 운산면의 삼화목장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 신창리 개심사 · 용현리 보원사지 · 태봉리 문주사에 이르는 코스, ④ 서산시의 중심부에서 지곡면 산성리의 부성사 · 대요리의 정충신 유적 · 화천리의 안견기념관 · 대산면 독곶리의 공업단지에 이르는 코스 등이 있다.
대산면 화곡리는 뱅어포, 부석면 간월도리는 어리굴젓의 명산지로 유명하며, 특히 간월도 어리굴젓은 관광특산물로 이곳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몇 통씩 사갈 정도로 유명하다. 시내에는 호텔 · 여관 · 식당 및 위락시설들이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해 관광의 중심지를 이룬다.
최근 들어 서산A · B지구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담수호인 간월호와 부남호 일대는, 매년 11월부터 40여 종, 30여 만 마리의 철새들이 날아와 월동을 하고 있어서 새로운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다. 이곳엔 앞으로 철새공원, 조류박물관, 조류사육시설 등이 들어서게 될 예정으로 더욱 많은 관광객이 찾게 될 것이다.
시의 북단에 위치한 읍. 면적 105.25㎢, 인구 1만 5452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대산리이다. 본래 일도면(一道面) · 이도면(二道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두 면 중 환성리(還城里) · 대요리(大要里)를 제외한 지역과 지곡면의 웅도리를 병합해 10개 리로 개편하면서 대산면이 되어 서산군에 속하였다.
1991년에 읍으로 승격했으며,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읍내에는 망일산(望日山, 302m) 등이 있고, 나머지 지역은 낮은 구릉과 평지를 이룬다. 평지는 대부분이 농경지로 이용되며,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이외에 생강 · 마늘 · 잎담배 등이 재배된다.
1984년 대호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전천후 관개시설을 갖추게 되어 이 지역의 농업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1983년 대산리와 독곶리 일대에 8.93㎢의 간석지를 매립해 3개 단지로 구성된 중화학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계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산공업단지의 입지는 대산읍뿐만 아니라 서산시 주민의 고용창출 등 경제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독곶리 일대의 해안에서는 천일제염과 바지락의 양식이 이루어졌으나 공업단지 조성 등으로 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나 생산량이 크게 감소하였다. 특히 천일제염은 역사가 깊어 이 지역의 원초적 촌락 형성에 중요한 구실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는 대산공업단지에서 지곡면으로 통하는 29번 국도, 기문리에서 시작해 화곡리 삼길포를 거쳐 대호방조제로 연결되는 615번 지방도, 기타 도로들이 개설되어 있고 최근 대규모의 도로확장공사가 계속되고 있으나, 대산공업단지의 물동량 급증으로 교통이 혼잡하다.
문화유적은 기온리의 고분군이 있다. 대산리(大山里) · 대로리(大路里) · 웅도리(熊島里) · 오지리(吾池里) · 기은리(其隱里) · 독곶리(獨串里) · 대죽리(大竹里) · 화곡리(花谷里) · 운산리(雲山里) · 영탑리(令塔里) 등 10개 리가 있다.
시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71.75㎢, 인구 7,65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가구리이다. 본래 해미군 고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면 서산리 일부와 홍주군(洪州郡) 고남면 · 상도면(上道面)을 병합해 14개 리로 개편하면서 다시 고북면이 되어 서산군에 속하였다.
1983년에 대사리가 홍성군 갈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 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면내에는 동쪽에 가야산맥의 지맥들이 뻗어 있고, 서쪽은 거의 평탄한 평야지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해 벼농사가 활발하며, 장요리 일대에서는 여름에 딸기의 재배도 활발하다. 해안의 간석지에서는 대하 · 바지락 등의 어패류가 대량으로 산출되고, 해안의 봉생리에는 천일제염이 발달해 있다. 천수만 일대의 서산A지구간척사업으로 간척농지가 많이 확보되었으나, 연안에서 이루어지던 바지락 · 대하 등의 양식업은 해양 생태계의 변화로 거의 퇴락해 버렸다.
도로는 해미면과 홍성군 갈산면으로 향하는 29번 국도가 면의 중부를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여러 개의 기타 도로들이 개설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가구리와 장요리에 선돌, 장요리 천장사 경내에 천장사 칠층석탑 등이 있다.
가구리(加口里) · 신송리(新松里) · 장요리(長要里) · 초록리(草綠里) · 용암리(龍巖里) · 신상리(新上里) · 남정리(南井里) · 기포리(機浦里) · 양천리(陽川里) · 정자리(亭子里) · 봉생리(鳳生里) · 사기리(沙器里) · 신정리(新井里) 등 13개 리가 있다.
시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23.93㎢, 인구 5,78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취평리이다. 본래 서산군 마산면(馬山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계리(月溪里) 일부를 인지면에 넘기고 화변면(禾邊面)을 병합해 13개 리로 개편하면서 부석면으로 되어 서산군에 속하였다.
1973년에는 안면면 간월도리가 편입되었다.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 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부석이라는 명칭은 서쪽의 적돌만(積乭灣) 바다 가운데에 암반이 뜬 것처럼 보이는 데에서 유래한다.
면내는 인지면과의 경계인 도비산(島飛山, 352m)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이 100m 미만이며, 장검천(長劍川) · 사정천(沙長川) 유역의 비옥한 평야는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해 가사리 일대에서는 사과 · 배 · 복숭아 · 포도 등의 과수재배가 이루어지고, 마늘은 군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다. 최근에는 생강의 재배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어 장차 생강의 주산지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이 지역의 명산물로 각광을 받던 간월도의 어리굴젓은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섬 주변 91㏊의 굴 양식장에서 많은 수입을 올렸다. 특히 이곳의 굴은 자연산 토화굴이 20% 정도나 되어 더욱 유명하였다. 그러나 최근 서산A · B지구간척사업에 의한 방조제 축조로 간월도의 남측을 제외한 전지역이 육지화되면서 굴과 바지락 양식장은 거의 폐허가 되고, 간척지 논과 호수로 변했다.
도로는 인지면과 태안군 남면으로 향하는 649번 지방도, 창촌에서 간월도를 거쳐 천수만 간척둑으로 향하는 지방도 등이 개설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과거에 육지에서 안면도로 가기 위해서는 서산시내와 태안읍내를 거쳐야 했으나, 서산A · B지구간척공사로 2개의 천수만 간척둑, 즉 간월호(看月湖)와 부남호(浮南湖)의 간척둑이 건설되면서 부석면 남단의 창촌에서 간월도리 간의 해안도로가 시의 서부면에서 안면읍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다.
문화유적은 취평리의 봉수와 부석사, 간월도리의 간월암이 있다. 간월호 · 부남호에는 각종 겨울철새들이 도래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취평리(翠坪里) · 강수리(江秀里) · 송시리(送枾里) · 월계리(月溪里) · 갈마리(渴馬里) · 마룡리(馬龍里) · 가사리(柯沙里) · 대두리(大頭里) · 지산리(芝山里) · 봉락리(鳳洛里) · 칠전리(七田里) · 창리(倉里) · 강당리(江堂里) · 간월도리(看月島里) 등 14개 리가 있다.
시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43.93㎢, 인구 4,31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리이다. 본래 서산군 상성연면(上聖淵面) · 하성연면(下聖淵面)의 두 면으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음암면(冬音巖面) 문기리(文起里) 일부를 병합해 9개 리로 개편하면서 성연면으로 되어 서산군에 속하였다.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100m 미만의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며, 동남부를 흐르는 성연천 및 지류인 명천천(鳴川川)과 예덕천(禮德川) 주변에 평야가 발달해 주요 농산물인 쌀을 비롯해 마늘 · 생강 · 잎담배 등의 생산이 이루어진다.
도로는 지곡면과 서산시내로 통하는 29번 국도가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음암면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동서 방향으로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해상교통은 해성리 · 명천리 · 평리 일대를 배후지로 하는 명천포구가 인접지역의 해항(海港)들과 통해 편리했으나, 1984년에 대호방조제가 완공됨에 따라 폐항이 되어 불편해졌다.
그러나 명천포구 일대에는 대단위 간척지가 형성되어 면내의 새로운 농업중심지로 대두되고 있다. 평리(坪里) · 일람리(日籃里) · 고남리(古南里) · 오사리(梧沙里) · 왕정리(旺井里) · 갈현리(葛峴里) · 명천리(鳴川里) · 예덕리(禮德里) · 해성리(海城里) 등 9개 리가 있다.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2.65㎢, 인구 5,74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장리이다. 본래 해미군의 운천면(雲川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산면(夫山面) · 이도면(二道面), 서산군 동암면(銅巖面) · 동음암면의 일부, 면천군 마산면(馬山面)의 일부를 병합해 18개 리로 개편하면서 운산면이 되었고 서산군에 속하였다. 1973년 당진군 정미면 여미리가 편입되었다.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 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였다.
면내에는 서북쪽으로 가야산맥의 지맥들이 뻗어 있어 산간지대를 형성하고 서부에 약간의 평야지대가 있으며, 신창저수지(新昌貯水池) · 용비저수지(龍飛貯水池) · 고풍저수지(高豊貯水池) 등이 관개한다.
도로는 음암면과 당진시 면천면으로 향하는 32번 국도가 면의 북단부를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해미면과 당진시 정미면으로 향하는 647번 지방도가 면의 서부를 남북 방향으로 지난다. 이 외에 기타 도로들이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서해안고속국도가 지나면서 서산인터체인지가 면의 북부에 설치되어서 태안반도 일대의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문화유적은 신창리에 개심사대웅전 · 개심사명부전, 용현리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 백암사지 · 보원사지 석조 · 보원사 지당간지주 · 보원사지 오층석탑 ·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가 있으며, 태봉리에 문주사 극락보전 · 문주사 금동여래좌상과 명종대왕태실 및 비가 있다. 그 밖에 와우리에 단군의 영정을 모신 천진궁(天眞宮)이 있고, 용장리에 성지가 있다.
용장리(龍獐里) · 신창리(新昌里) · 용현리(龍賢里) · 태봉리(胎封里) · 고풍리(高豊里) · 원평리(院坪里) · 안호리(安好里) · 갈산리(葛山里) · 와우리(臥牛里) · 팔중리(八中里) · 고산리(古山里) · 수평리(壽坪里) · 수당리(壽堂里) · 가좌리(佳佐里) · 소중리(小中里) · 상성리(上城里) · 원벌리(元伐里) · 거성리(巨城里) · 여미리(余美里) 등 19개 리가 있다.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94㎢, 인구 1만 93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당리이다. 본래 서산군 동음암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기리 일부를 제외한 동음암면, 두치면(豆峙面) 석천리(石川里) 일부를 제외한 동암면, 해미군 운천면 성암리를 병합해 11개 리로 개편하고 음암면이 되어 서산군에 속하였다.
1973년에는 수석리를 서산읍에 편입시켰다.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면내에는 북쪽에 은봉산(銀峰山, 284m) · 양대산(良垈山, 175m) 등이 있어 구릉지를 형성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평야지대를 이룬다. 이 평야지대에는 대교천(大橋川) 등이 농업용수를 관개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이외에 콩 · 생강 · 마늘 등이 생산된다. 1984년 대호방조제의 완공으로 농업관개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이 지역 농업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도로는 서산시내와 운산면으로 통하는 32번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동서방향으로 지나고, 서산시내와 해미면으로 향하는 29번 국도가 면의 남단부를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율목리에 성지가 있고, 유계리에 김기현가옥이 있다. 도당리(道堂里) · 탑곡리(塔谷里) · 문양리(文陽里) · 율목리(栗木里) · 부산리(富山里) · 상홍리(上紅里) · 신장리(新莊里) · 유계리(遊溪里) · 성암리(星巖里) · 부장리(富長里) 등 10개 리가 있다.
시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35.47㎢, 인구 7,9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둔당리이다. 본래 서산군 인정면(仁政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정면 둔당리 · 야당리 · 모월리 · 산동리 · 애정리 · 남정리 등 6개 리와 노지면(蘆旨面) 화수리 · 거리 · 성리 · 갈산리 등 4개 리, 서산면 풍전리를 병합해 11개 리로 개편하면서 인지면이 되어 서산군에 속했고, 그 뒤 갈산리가 서산읍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면내에는 북쪽에 금강산, 서쪽에 토성산(土城山, 100m), 남쪽에 도비산(352m) 등이 있어 동남부를 제외하면 농경지가 많지 않으나, 풍전저수지 · 둔당저수지 등의 저수지와 주변의 소하천이 관개용수로 이용되어 벼농사 짓기가 편리한 편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고, 이 외에 특히 마늘의 주산지로 전 농가의 70% 정도가 약 200㏊의 경지에서 연간 1,300여 톤을 생산해 많은 수익을 올리며 재배면적도 늘어나고 있다. 남부 해안은 짧은 거리에 수심이 얕고 항만시설이 없어 해산물의 생산은 거의 없다.
도로는 서산시내와 팔봉면으로 향하는 32번 국도, 서산시내와 부석면으로 향하는 649번 지방도 등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화수리에 백제의 성지, 애정리에 송곡서원이 있다. 둔당리(芚堂里) · 야당리(野堂里) · 모월리(毛越里) · 산동리(山東里) · 애정리(艾井里) · 남정리(南井里) · 화수리(花秀里) · 차리(車里) · 성리(成里) · 전리(豊田里) 등 10개 리가 있다.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7.90㎢, 인구 9,33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천리이다. 본래 지곡현 · 지곡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산면(文山面) · 대산면의 일부를 병합해 9개 리로 개편하면서 새로운 구역을 관할하는 지곡면이 되어 서산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 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동 · 남 · 북 삼면은 대부분이 100m 미만의 구릉성 산지이며, 해안을 따라 농경지가 발달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이외에 생강 · 마늘 등이 생산된다. 1984년에는 대호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완벽한 전천후 관개시설을 갖추게 되어 이 지역의 농업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해안의 간석지에서는 천일제염이 생산되는데 이곳의 천일제염은 역사가 깊어 이 지역의 원초적 촌락 형성에 중요한 구실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간석지에서는 바지락 등의 양식도 활발했으나, 방조제공사 등으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로 점차 쇠퇴하고 있다.
최근 면 소재지 맞은편에 새로운 외곽도로가 건설되었다. 대산읍과 성연면으로 통하는 29번 국도가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팔봉면으로 향하는 605번 지방도가 개설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산성리에 토미성지와 부성사가 있고, 대요리에 정충신묘와 정충신 사당인 진충사 등이 있다. 화천리 뒷산에는 이곳에서 출생한 조선시대의 화가 안견(安堅)의 기념관이 있다.
화천리(花川里) · 산성리(山城里) · 장현리(長賢里) · 연화리(蓮花里) · 중왕리(中旺里) · 도성리(桃星里) · 대요리(大要里) · 환성리(環城里) · 무장리(舞將里) 등 9개 리가 있다.
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51.35㎢, 인구 3,50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어송리이다. 본래 서산군 영풍창면(永豊倉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현면(文峴面)과 태안군 동이면(東二面) · 북일면의 일부를 병합해 9개 리로 개편하면서 팔봉면이 되어 서산군에 속하였다.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동쪽에는 팔봉산이 솟아 있어 산간지대를 이루고, 나머지 지역은 저산성 구릉지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를 비롯해 생강 · 마늘 등의 특용작물이 생산되고 있다. 육지에서 3.7해리 떨어진 곳에 있는 고파도의 해안에는 대규모의 천일염전이 조성되어 있다. 면내에는 고파도 이외에 5개의 섬이 분포해 있는데, 이들 섬에서는 뱅어 · 굴 · 김 등이 많이 산출된다.
도로는 시내와 태안군 태안읍으로 향하는 32번 국도, 32번 국도상의 대문다리에서 지곡면으로 향하는 605번 지방도 등이 개설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해상교통은 고파도가 인천항과 통하는 항로의 기항지 구실을 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어송리에 경소암지(慶蘇庵址) · 경수암지(慶壽庵址), 양길리에 운암사지(雲巖寺址), 진당리와 호리에 성지 등이 있다. 어송(漁松) · 양길(陽吉) · 대황(大黃) · 흑석(黑石) · 고파도(古波島) · 호(虎) · 덕송(德松) · 진장(榛墻) · 금학(金鶴) 등 9개 리가 있다.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8.25㎢, 인구 8,07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해미군 동면(東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면과 동암면을 병합해 22개 리로 개편하면서 지성면이 되어 서령군(瑞寧郡)에 속하였다. 1916년 행정구역 개편시 해미면으로 개칭되면서 서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에 서산시와 서산군이 도농통합 형태의 서산시로 개편되어 이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동쪽은 구릉지대가 대부분이나, 서쪽은 평야지대로서 해미천을 중심으로 경지정리가 비교적 잘 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로 벼농사의 중심지이며, 이 외에 마늘 · 생강 등도 많이 생산한다.
도로는 시내와 고북면으로 향하는 29번 국도, 예산군 덕산면으로 향하는 45번 국도, 운산면으로 향하는 647번 지방도가 읍내리에서 교차하고, 기타 도로들이 개설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서해안고속국도가 지나면서 면의 중앙부에 해미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태안반도의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상업은 상설시장과 버스터미널 일대에 입지해 있는 각종 서비스 기능체들과, 상설시장 일대에서 5일과 10일에 열리는 5일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해미읍성, 황락리에 일락사 대웅전 · 일락사 삼층석탑 · 일락사 철불 · 일락사 범종, 반양리에 반양리 산성지, 소성리에 태성산성, 오학리에 해미향교 등이 있다.
읍내리(邑內里) · 휴암리(休巖里) · 대곡리(大谷里) · 산수리(山水里) · 황락리(皇洛里) · 오학리(烏鶴里) · 삼송리(三松里) · 관류리(館柳里) · 홍천리(紅泉里) · 동암리(冬巖里) · 반양리(磻陽里) · 웅소성리(雄梳城里) · 귀밀리(貴密里) · 억대리(億垈里) · 전천리(前川里) · 응평리(鷹坪里) · 양림리(良林里) · 기지리(機池里) · 언암리(堰巖里) · 석포리(石浦里) · 저성리(猪城里) · 조산리(造山里) 등 22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