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구려시대의 창고를 지칭하는 용어.
내용
이것이 백제에 영향을 끼쳐서 창고사무를 맡은 내관(內官) 소속의 관청 이름을 경부(广+京 部)라고 부르게 된 듯하다. 비록 『북사(北史)』권94 백제전에는 이를 내략부(內掠部)·외략부(外掠部)라 했으나, 『한원(翰苑)』권30 백제조에 인용된 괄지지(括地志)에는 각기 내경부(內椋部)·외경부(外椋部)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권40 직관지(職官志)에도 이 경(椋)이 경(广+京)으로 표기되어 있다. 여기에서의 경은 일본어 경(椋, クラ)이 그대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기 이전 수도였던 집안(集安) 일대에는 당시 어느 가옥이나 본채 옆에 2층으로 된 작은 창고가 있었다.
이는 얇은 목재를 가로 또는 세로로 엮어서 다락식 창고 형태로 지은 것인데, 현지에서는 옥미창(玉米倉) 혹은 포미창(包米倉)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옥미창은 특히 만보정묘구(萬寶汀墓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옛 강서군(江西郡) 덕흥리 벽화고분에 보이는 2층 다락집도 이와 모양이 비슷하다.
한편, 집안의 미선구(麻線溝) 제1호묘에 보이는 귀틀집(高床式 건물)은 일본의 쇼소인[正倉院] 쌍창(雙倉)으로 연결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지(三國志)』
- 『북사(北史)』
- 『한원(翰苑)』
- 「고구려의 부경」(신형식, 『동양학』26, 1996)
- 「집안 고구려유적의 조사연구」(신형식,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연구지원보고자료집』1, 1996)
- 「부경고」(주남철, 『민족문화연구』27, 1994)
- 「고구려 부경고」(신영훈, 『건축』15, 1990)
- 「百濟の掠及び掠部」(稻葉岩吉, 『釋椋』,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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