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사찬(沙飡) 대현(大玄)이다. 692년(효소왕 1) 9월 화랑이 되었고, 그 무리는 1,000여명이 되었다 한다.
그는 이듬해 3월 무리를 이끌고 금란(金蘭 : 지금의 강원도 通川)으로 놀이〔遊〕를 나가서 다시 북명(北溟 : 지금의 元山灣 부근) 방면에 이르렀다가 낭도(郎徒)인 안상(安常)과 함께 적인(狄人)에게 붙잡혀 행방불명이 되었다.
조정에서는 이 소식에 접하자 궁궐 안 창고에 보관중인 왕실의 신기한 보물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신통력에 의지하려 하였으나 마침 이를 도난당하여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 해 5월 부례랑의 양친이 백률사(柏栗寺) 대비상(大悲像) 앞에 나아가 여러 날 기도를 드렸던바, 부례랑은 해룡(海龍)으로 화하여 나타난 신적(神笛 : 萬波息笛)을 타고 바다를 건너 안상과 함께 무사히 귀환하였다고 한다.
부례랑은 신적을 가지고 궐내에 들어가 국왕으로부터 큰 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대각간(大角干)에 임명되고 그의 아버지는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어머니 용보부인(龍寶夫人)은 사량부(沙梁部)경정궁주(鏡井宮主)에 임명되었다 한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러한 전승은 어디까지나 설화적인 것이다. 다만 이를 통하여 당시 성행하던 불교의 관음신앙(觀音信仰)과 신라의 평화를 상징하는 만파식적에 관한 관념 및 화랑도의 유행(遊行)을 통한 수행의 모습 등에 관한 일면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