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단에서는 1920년 초 일명 ‘진영사건(進永事件)’ 등으로 인하여 많은 동지들이 계속 부산경찰서에 붙잡히자 이에 대한 보복을 하기 위하여 이를 계획하였다.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은 무역상인으로서 싱가포르에 와 있던 단원 박재혁을 상해(上海)로 소환하여 부산경찰서장을 죽일 것을 지시하였다.
박재혁은 1920년 9월 초상해를 떠나 나가사키(長崎)로 향하였다. 그는 상해를 떠나기 전 부산경찰서장이 고서수집가라는 사실을 탐지, 많은 중국고서를 사들여서 고서상으로 위장하였으며, 그 고서더미 속에 폭탄과 전단(傳單)을 감추었다.
그는 나가사키에서 대마도(對馬島)를 거쳐 9월 13일 고향인 부산에 도착하여 자기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이튿날 아침 부산경찰서를 찾아가 서장에게 면회를 요청하였다.
고서에 관심이 많은 서장은 쾌히 면회를 승낙하였다. 박재혁은 서장과 단독으로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좌하여 고서를 보여주는척하다가 폭탄과 전단을 꺼내어 전단을 서장 앞에 뿌리고, “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라 하고, 계속하여 서장의 죄를 일일이 열거한 다음, 폭탄을 서장 앞에 던졌다.
폭탄이 터지자 두 사람은 모두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박재혁은 그 뒤 단식과 함구로 9일을 버티다 순국하였고, 서장도 중상을 입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