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은 고려시대에 가는 글자 34자로 새긴 삼본화엄경의 목판이다. 3종 634판으로, 부석사에 소장되어 있다. 동진의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화엄경』 진본 60권, 당의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당 반야가 번역한 『화엄경』 정원본 40권이다. 첫 번째 번각 시기는 12세기∽13세기 중반으로, 두 번째 번각 시기는 고려 말∽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한국 『화엄경』은 대부분 매항 17자인데, 이 각판은 ‘자세자밀(字細字密)‘의 무주(無註) 34자이다. 거란본계 세자무주의 34자본은 이 목판만 전하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정의
고려시대에 가는 글자 34자로 새긴 삼본화엄경(三本華嚴經)의 목판.
개설
내용
학계에서는 원종 · 충렬왕 때의 고승인 복암(宓庵)이 「안본대장경찬소(丹本大藏經讚疏)」에서 ‘지박자밀(紙薄字密)하여 부질(部帙)이 간경(簡輕)하다'고 언급한 경의 계통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복암이 언급한 것의 현존 세자무주 17항 34자 주본 권제1∼10 및 진본 권제30∼40(결락본)과 새로 발굴된 진본을 대사해보니 그것의 첫 번각임이 뚜렷하게 실증되었다. 그리고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이 부석사 각판에서 2부를 찍어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이관한 삼본과 면밀히 대사해본 결과, 위의 첫 번각본을 바탕으로 다시 새겨낸 중번각이며, 여기에 추각(追刻)한 보판이 섞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의 초 · 중 번각시기는 간기(刊記)가 나타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거란장경이 1063년, 1099년, 1107년에 세 차례 수입되었는데, 그 중 일차의 것은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에 의할 때 매항 17자본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2·3차의 것 중 하나가 ‘지박자밀’의 세자무주 34자본에 해당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볼 때 첫번째 번각시기는 넓게 잡아 12세기 이후로 추정할 수 있는데, 부석사의 사세(寺勢)가 희종의 다섯째 아들인 충명국사(冲明國師) 각응(覺膺)이 주지직에 있을 때 크게 번창하였음을 감안하면 그 하한은 13세기 중엽 무렵까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번각은 장정까지 거란 원본을 모방하여 호접장으로 꾸몄음이 그 특징이다.
두 번째의 번각은 첫 번각본을 바탕으로 새기고 각수명을 군데군데 표시하였으나 그 시기는 표시하지 않았다. 판각기법이 훨씬 떨어지는 점으로 미루어 넓게 고려 말 조선 초기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현전본에 의하면 새로 판서본(板書本)을 써서 보각한 것이 여기저기에 혼입되어 있다. 그 중 진본 권제32의 9장에 해당하는 각판에는 ‘융경2년(선조 1, 1568) 무진 정월일 경상도 영천지 태백산 부석사 개판(隆慶二年戊辰正月日慶尙道永川地太白山浮石寺開板)’이 새겨져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는 그 책장이 결락되었지만, 현 각판에는 그 개판기록에 이어 시주자들과 서사자(書寫者)인 황언경(黃彦卿), 각수인 인천(印天), 연판자(鍊板者)인 불명(佛明)이 표시되어 있다. 책 중의 보각에는 여기에 표시되지 않은 각수명이 나타나고 있는 점으로 보아, 1568년 이전에도 경판의 일실 또는 마손으로 인하여 보각이 일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국보』12 서예·전적(천혜봉, 예경산업사, 1985)
- 「부석사의 삼본화엄경판」(천혜봉, 『불교미술』 3, 동국대학교 박물관, 197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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