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동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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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윤선도 원림 부용동 정원
보길도 윤선도 원림 부용동 정원
건축
유적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윤선도가 조성한 정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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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윤선도가 조성한 정원.
내용

1636년(인조 14)에 윤선도(尹善道)가 이 곳에 정착하면서 거처할 집을 짓고 그에 딸린 정자와 연못 등을 만든 것이 이 정원이다. 1636년은 왕이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한 때로, 항복을 반대하던 윤선도는 벼슬을 버리고 은거를 결심하여 해남 연동(蓮洞)의 본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 섬에 별서(別墅 :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별장)를 짓고 여기에 정원을 꾸민 것이다.

정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처하는 살림집이 있는 낙서재(樂書齋) 주변과, 휴식과 독서를 위해 건너편 산허리의 바위 위에 집을 마련한 동천석실(洞天石室) 주변, 그리고 동리 입구의 세연정(洗然亭) 주변이다. 낙서재는 서실(書室)을 갖춘 살림집으로 북향하고 있으며, 옆으로 낭음계(朗吟溪)라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낭음계의 양편에 곡수당(曲水堂)과 무민당(無憫堂)의 두 건물을 지었다. 이 두 건물의 곁에는 넓고 네모진 연못이 있다.

동천석실은 천하의 명산경승으로 신선이 살고 있는 곳을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한 데서 이름지어진 곳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세연정 부근은 이 정원에서 가장 공들여 꾸민 곳으로, 해변에 바로 인접한 동구(洞口)에 인공으로 물길을 조성하면서 연못들을 만들고 정자와 대(臺)를 지어 경관을 즐기도록 하였다.

연못은 곡지(曲池)와 방지(方池)로 구성되는데 동구를 흐르는 내를 돌로 된 보로 막아 만든 곡지에는 큰 바위들을 점점이 노출시켰으며, 방지에는 한 쪽에 네모난 섬을 만들고 그 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방지의 동쪽 물가에는 돌로 된 네모진 단 두 개를 나란히 꾸며놓았는데, 이곳은 무희가 춤을 추고 악사가 풍악을 울리던 자리이다. 방지 남쪽에는 나지막한 동산이 있는데 세연정은 이 동산 위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부용동정원은 윤선도가 죽자 곧 황폐하게 되었고, 3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초석이 흩어져 있을 뿐 과거의 건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주변에 인가가 산재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인적이 드물어 정원의 유적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어 연못이나 건물자리들이 뚜렷하다.

이 정원은 건립 연대가 확실하고 유적이 온전히 남아 있는데다 조선시대의 정원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큰 규모의 별서정원이라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높다. →보길도윤선도유적

참고문헌

『고산유고(孤山遺稿)』
『보길도윤고산유적조사보고서』(완도군,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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