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서울 북한산(일명 三角山) 남쪽 승가사(僧伽寺) 서남방에 위치한 비봉(碑峰) 꼭대기에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이 비 부근에 승가사가 있고 조선 태조 때의 국사였던 무학(無學)의 탑비가 있어 종래 ‘무학의 비’ 또는 ‘도선(道詵)의 비’로 알려져 왔으나, 1816년(순조 16) 7월에 김정희(金正喜)가 김경연(金敬淵)과 함께 이 비석을 조사하고, 다시 이듬 해 6월 조인영(趙寅永)과 같이 비문을 조사하여 68자를 심정(審定), 비로소 진흥왕순수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비가 세워진 연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561년(진흥왕 22) 창녕비(昌寧碑)가 건립된 뒤부터 568년(진흥왕 29) 황초령비(黃草嶺碑)와 마운령비(摩雲嶺碑)가 건립되기까지의 기간 중 어느 한 시기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한편 568년 이후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비는 윗부분이 일부 마멸되어 현재 남아 있는 비신은 높이가 154㎝, 너비가 69㎝이다. 비문은 모두 12행이며 행마다 해서체로 32자가 새겨져 있다.
진흥왕은 553년(진흥왕 14)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지방을 빼앗아 이 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했으며, 555년(진흥왕 16) 10월에는 몸소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을 획정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기념해 순수비를 세웠을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산비에는 일척간(一尺干: 伊飡의 별칭)의 고위관등을 가지고 있던 내부지(內夫智)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또한 남천군주(南川軍主)의 직명도 나타나 있어, 신라시대의 인물 및 관직제도 연구에 참고가 된다. →진흥왕순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