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3칸, 측면 3칸의 건물. 대웅전의 서쪽 한단 낮은 곳에 세워져 있으며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연화교(蓮華橋)·칠보교(七寶橋)를 거쳐 안양문(安養門)을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위치에 있다.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것을 1750년(영조 26)에 오환(悟還)·무숙(武淑) 등이 중창한 것이지만, 기단(基壇)과 초석·계단 등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 안에는 내고주(內高柱) 4개를 세웠는데, 뒤쪽의 고주 사이에는 후불벽(後佛壁)을 세워 그 앞에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1962년 지정)을 봉안하고 있다.
기둥은 민흘림으로, 변주(邊柱 : 변두리기둥)의 상부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얹고 다포작(多包作)의 공포(栱包)를 짰는데, 공포는 내외2출목(內外二出目)으로 외부로 뻗어나온 쇠서[牛舌] 위에 연꽃 봉오리[蓮蕾]을 조각하고 그 위에는 봉두(鳳頭)를 조각하여 조선 후기적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