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동예(東穢)의 부족국가.
내용
주변 부족국가들이 상호항쟁으로 몰락해갔으나 상당기간 존속되어오다가 한때 고구려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245년 낙랑태수 유무(劉茂)와 대방태수 궁준(弓遵)의 침입을 받고 다시 중국 군현의 영향권내에 들어가서 조공을 바치는 등 물자를 수탈당하였다.
이렇듯 고구려와 중국 군현과의 견제를 받아 부족국가단계 이상의 정치적 성장을 보지 못하다가, 낙랑·대방군이 약화됨에 따라 결국 고구려에 병합당하였다.
지배조직으로는 불내예후(不耐穢侯)라는 족장을 중심으로 하여 공조(功曹)·주부(主簿) 등 예민(穢民)으로 구성된 관직이 있었고, 또 247년 불내예후는 중국(당시 魏)에 의하여 불내예왕(不耐穢王)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내예후는 정치권력을 과시할 수 있는 특별한 거처를 가지지 못하고, 민간에 섞여 살 정도로 권력의 집중을 이룩하지 못한 사회였다. → 동예
참고문헌
- 『삼국지(三國志)』
- 「옥저(沃沮)와 동예(東穢)」(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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