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전서 ()

사계전서 / 가례집람
사계전서 / 가례집람
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학자, 김장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87년에 간행한 시문집.
이칭
이칭
사계선생유고(沙溪先生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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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학자, 김장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87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이 문집은 원래 『사계선생유고(沙溪先生遺稿)』라는 이름으로 2회에 걸쳐 간행된 바 있다. 초간본은 1685년(숙종 11) 왕명에 의해 그의 문인 송시열(宋時烈)이 편집하여 1687년 교서관(敎書館)에서 간행했고, 재간본은 1792년(정조 16) 후손인 김희(金熹) 등이 이전의 판본을 개각하여 간행하였다. 이 해제본은 1923년 후손들이 저자의 저술을 총망라하여 간행한 것이다. 권두에 김수항(金壽恒)이 초간본 간행시에 쓴 구서(舊序)가 있다.

서지적 사항

51권 24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수에 범례와 목록이 있고, 각 권마다 개별 목록이 별도로 있다. 권1에 시 3수, 소 26편, 차(箚) 1편, 계(啓) 3편, 장계(狀啓) 2편, 권2∼4에 서(書) 86편, 권5에 서(序) 9편, 발 3편, 기 2편, 설 1편, 공이(公移) 3편, 축문 1편, 제문 2편, 권6∼9에 묘갈명 5편, 묘지명 1편, 행장 5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10에는 연석문대(筵席問對), 권11∼16에 경서변의(經書辨疑) 8편, 권17∼20에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권21·22에 전례문답(典禮問答) 15편, 권23∼30에 가례집람(家禮輯覽), 권31∼34에 상례비요(喪禮備要), 권35∼41에 의례문해(疑禮問解), 권42에 의례문해·습유(拾遺)가 있다.

권43∼45는 부록으로 권43·44에 연보, 권45에 어록 2편이 실려 있다. 권46에 거의록(擧義錄), 권47에 원향록(院享錄)·봉안문·문인록(門人錄), 권48에 가장·행장, 권49에 시장(諡狀)·신도비명·묘지명·묘표음기(墓表陰記)·돈암서원비·돈암서원이건비, 권50에 사제문·교유문·제문·만사·제편서발(諸篇序跋), 권51에 논시호사소(論諡號事疏) 등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시는 「가야산봉윤정경(伽倻山逢尹正卿)」·「재유가야산(再遊伽倻山)」 등 가야산에서 지은 것 2수와 친분이 있었던 최명룡(崔命龍)에 대해 쓴 만시(輓詩) 1수가 있을 뿐이다.

소 가운데 「환향후진소회소(還鄕後陳所懷疏)」는 저자가 만년에 고향에 돌아와 제진(製進)한 것이다. 흉년에 많은 군대를 모집하고 백성들로부터 포목과 물자들을 무리하게 거두어들이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한 다음, 장정(壯丁)을 정선하여 군대의 숫자를 줄이도록 건의한 내용이다.

「사집의잉진십삼사소(辭執義仍陳十三事疏)」는 1624년(인조 2) 집의를 사직하면서 올린 것이다. 이 때 개진한 13개 항은 입대본(立大本), 회구업(恢舊業), 존홍범(尊洪範), 강소학(講小學), 진성학(盡聖學), 경사전(敬祀典), 친구족(親九族), 체군신(體羣臣), 친청정(親聽政), 혁민폐(革民弊), 파선혜청(罷宣惠廳), 수군정(修軍政), 엄금아(嚴禁衙) 등이다. 「사공조참의겸진소회소(辭工曹參議兼陳所懷疏)」도 역시 1624년에 바친 것이다. 내노(內奴)가 백성들에게 작폐(作弊)하는 일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구폐책을 진언한 내용이 들어 있다.

「신변사원소(伸辨師寃疏)」는 서성(徐渻)·정엽(鄭曄)·유순익(柳舜翼)·심종직(沈宗直) 등 4인과 연명(連名)하여 상소한 것이다. 스승이었던 송익필(宋翼弼)이 생시에 그의 아버지 송사련(宋祀連)의 일로 환천된 것이 풀리지 못한 채 죽었으므로 그를 신원할 것을 청원한 것이다. 1626년(인조 4)에 올린 「논시사소(論時事疏)」는 호패법 시행의 폐단을 지적하고 그 시정책을 건의한 내용이다.

서(書)의 「여이자상항복(與李子常恒福)」은 정철(鄭澈)의 고역전말(告逆顚末)을 문의한 것으로, 이항복(李恒福)의 답서가 부기되어 있다. 「여이성징정구서(與李聖徵廷龜書)」에서는 이정구에게 강항(姜沆)의 절의를 표양(表揚)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귀(李貴)에게 보낸 서찰이 전후 5편이 있다. 그 중에는 인조반정 뒤에 군왕을 바로 보도(輔導)하고 민심의 향배를 잘 파악하여 인조반정의 의거가 개인의 부귀를 위해 취해졌다는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해 달라는 충고의 편지가 있고, 그 외에 조식(曺植)과 이황(李滉)이 하종악(河宗萼) 처(妻)의 옥사 문제로 절교한 일을 비롯하여 동서 분당의 원인을 논한 것 등이 있다.

권6의 말미부터 권7의 전편에 걸쳐 「율곡이선생행장(栗谷李先生行狀)」이 수록되어 있는데, 무려 1만 1,000여 자에 달하는 장편이다. 권9에는 정철(鄭澈)의 행록(行錄)이 수록되어 있다.

권11∼15의 『경서변의』는 『소학』·『대학』·『논어』·『맹자』·『중용』·『서경』·『주역』·『예기』 등을 교정하고 주해하여 의리를 밝힌 것이다. 고증적인 경향은 별로 현저하지 않으나 학구적 태도가 엿보인다. 『근사록석의』는 『근사록』의 관계 원문을 앞에 놓고 어구 해석을 비롯한 제 문제에 대해 주희·이황·이이 등의 설을 인용하고 간혹 자신의 견해를 부설(附說)하여 토구(討究)한 것이다.

「전례문답」 중 권21의 것은 전례에 관한 서한 11편과 발문 3편 등을 합편한 것이고, 권22의 것은 고증(考證)으로 중국 역대 황가의 상(喪)·제례(祭禮)에 관한 기록을 발췌한 것이다. 이는 당시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定遠君)이부(李琈)의 추존문제를 둘러싼 예론(禮論)의 시비를 그의 처지에서 밝힌 것이라 하겠다.

『가례집람』은 도설(圖說) 2권과 해설 6권으로 되어 있다. 도설은 사례(四禮) 전반에 걸쳐 관계건물격식(關係建物格式)·예기(禮器)·예법 절차 및 각종 문건서식(文件書式) 등을 세부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도해한 것이다. 그 중에도 상례에 관한 것은 특히 상밀하다. 해설은 『주자가례』의 차서(次序)에 따라 본문 밑에 쌍행(雙行)으로 제가(諸家)의 설을 인용하여 소개하고 자기의 의견을 부설하였다. 『주자가례』에 생략된 사항이나 속례(俗禮) 등도 첨부·보충되어 있다.

『상례비요』는 전4권으로 단행본에는 원래 도설이 있으나 이 책에서는 『가례집람』에 도설을 실었으므로 중첩을 피하고 있다. 『가례집람』의 상례 부분은 학술적인 해명이 주로 되어 있고, 『상례비요』의 그것은 실용적인 면에 치중한 감이 든다. 『의례문해』는 전8권으로 사례에 관한 문답식의 기술이다. 역시 상례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습유에는 주로 제례에 관한 것이 많다.

이상 여러 종류의 예(禮)에 관한 그의 저술은 대체로 형식·절차 면에 치중되어 있고, 예에 관한 근본정신이나 의의 등을 궁구한다는 점에서는 소략한 감이 있다. 저자는 예학의 대가로서 이에 관한 많은 저술을 통하여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별도의 전문적인 평가를 요한다.

부록의 「어록」은 송시열·정홍명(鄭弘溟) 두 사람이 찬술한 것이다. 「거의록」은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로 의병을 일으켜 근왕(勤王)한 기록으로, 의병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의 약전(略傳)이 들어 있다. 「문인록」에는 그의 문인 270인의 명단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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