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문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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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1619년 찬집청에서 1592년부터 1608년 사이 명과의 외교 문서를 모아 편찬한 관찬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승희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사대문궤 미디어 정보

사대문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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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19년 찬집청에서 1592년부터 1608년 사이 명과의 외교 문서를 모아 편찬한 관찬서.

내용

『사대문궤(事大文軌)』는 23권 23책으로 된 목활자본이다. 이 책은 『승문원 등록(承文院謄錄)』을 바탕으로 편찬한 것이다. 책의 구성은 주로 명나라의 병부·예부 등과 주고받은 자(咨)·회자(回咨) 등과 그 밖에 주(奏)·표(表)·장(狀)·조(詔)·유지(諭旨) 등으로 되어 있다. 본래 모두 54권 54책이었으나,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전하는 것은 23권 23책뿐이다.

당시 안으로는 임진왜란을 겪을 때이며 밖으로는 후금(後金)이 발흥하던 때여서 외교상의 문제들이 특히 중요한 시기였다. 또 조선 국내에서는 선조 말에 광해군의 세자 책봉 및 왕위 승습(承襲)을 둘러싸고 미묘한 세력 대립의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명나라는 새로이 발흥하는 후금과 조선과의 내통을 차단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상황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당시의 외교 사정들이 상세히 나타나 있는데, 조·명 관계에 관한 사건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원을 포함, 여러 가지 교섭의 내용과 광해군의 분조(分朝)에 관한 사항, 광해군의 왕세자 책봉에 관한 교섭 내용, 위서(僞書) 또는 정응태(丁應泰)의 무고(誣告) 등에 대한 변무(辨誣) 내용, 광해군을 후사로 세워 왕위를 승습한 뒤 그 동의를 얻기 위한 교섭 등이다.

이 책은 1925년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수회에서 해설·목록을 붙여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7집으로 영인, 간행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사대문궤』는 1차 사료로서, 임진왜란에서 광해군 즉위 동안의 외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7(조선사 편수회, 조선총독부,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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