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부

  • 역사
  • 제도
  • 삼국
신라시대 왕경의 편재구역.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기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신라시대 왕경의 편재구역.

내용

육부 중의 하나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서기 32년(유리이사금 9) 종래의 육촌(六村) 중의 하나이던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을 개명하여 사량부라 하고, 이에 최씨성(崔氏姓 : 삼국유사에는 鄭氏姓이라 하였음)을 배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후대에 아마도 469년(자비마립간 12) 서울의 방리(坊里) 명칭을 제정했을 때 종래의 족제적 사회조직을 행정조직으로 개편함으로써 나타난 것인 듯하다.

급량부와 더불어 육부 중 가장 우세한 존재로, 남천(南川) 이북, 서천(西川) 이동, 북천(北川) 이남일대를 포함했던 것으로 추측되며(일설에는 西川 이서, 仙桃山 이동으로 추리함), 김씨출신이 중심이 된 조직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가 망한 뒤 고려는 940년(태조 23) 이를 남산부(南山部)로 고쳤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

  • - 『삼국유사』

  • - 「신라의 기원문제」(이병도, 『진단학보』 8, 1937 ;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 - 「사로육촌과 경주고분」(김원룡, 『역사학보』 70, 1976)

  • - 「신라 상고시대의 육촌과 육부」(이종욱, 『진단학보』 49, 1980)

  • - 「新羅六部考」(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 東洋文庫, 195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