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의 정3품 관직.
내용
1308년(충선왕 복위) 한림원(翰林院)의 후신인 문한서(文翰署)와 사관(史館)을 합쳐 예문춘추관으로 개편할 때 문한서의 사학(司學)을 사백(詞伯)으로 고쳤다.
정원은 2인이며 모두 겸관(兼官)이었다. 1311년 제학(提學)으로 개칭되었고, 이후 학사(學士), 제학으로 여러 차례 고쳐지다가 조선시대에 예문관(藝文館)의 종2품 관직인 제학으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고려한림원고(高麗翰林院考)」(최제숙, 『한국사총론(韓國史論叢)』4,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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