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사 ()

이광사 초상/신한평
이광사 초상/신한평
회화
인물
조선 후기, 원교체를 완성한 서화가.
이칭
도보(道甫)
원교(圓嶠), 원교(員嶠), 원교(員喬), 수북(壽北)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05년(숙종 31)
사망 연도
1777년(정조 1)
본관
전주(全州)
주요 저서
두남집, 원교집선, 원교서결
주요 작품
원교법첩, 도원도, 고승완회도, 층장비폭도
관련 사건
나주괘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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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광사는 조선 후기 원교체를 완성한 서화가이다. 소론 명문가 출신으로, 양명학의 선구 정제두 문하에서 활동했고, 윤순에게 서예를 배워 동국진체 정립에 이바지했다. 전서, 예서, 해서, 초서에 두루 능했고, 서첩과 금석문, 편액 등의 묵적, 『원교서결』과 같은 서예 이론서를 남겼다. 또한 산수와 인물을 그린 작품도 전한다.

정의
조선 후기, 원교체를 완성한 서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圓嶠, 員嶠, 員喬) · 수북(壽北)이다. 소론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1755년(영조 31) 나주괘서사건(羅州掛書事件)에 큰아버지와 함께 연루되어 23년간 유배 생활을 하다 생을 마쳤다. 맏아들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쓴 이긍익(李肯翊)이고, 둘째 아들 이영익(李令翊)도 문학과 서예에 뛰어났다.

주요 활동

조선 양명학의 선구 정제두(鄭齊斗) 문하에서 수학하며 강화학파(江華學派)를 형성했다. 윤순(尹淳)에게는 서예를 배워 동국진체(東國眞體) 정착에 이바지했다. 또한 고법(古法)을 연마하여 원교체(圓嶠體)를 완성했으며, 서예사의 이론 체계 수립에도 기여했다.

학문과 저술

전서, 예서, 해서, 초서에 두루 능했고, 서첩과 금석문, 편액 등의 묵적(墨跡)도 많이 전한다. 대표적인 서첩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교법첩(圓嶠法帖)』(1755)이 있고, 그 외 유배 시절의 글을 모은 『두남집(斗南集)』, 시문을 모은 『원교집선(圓嶠集選)』, 서예 이론서인 『원교서결(圓嶠書訣)』 등이 전한다.

그림은 산수, 인물, 초충을 그렸다. 「도원도(桃源圖)」[국립중앙박물관], 「고승완회도(高僧玩繪圖)」[1746, 간송미술문화재단], 「층장비폭도(層嶂飛瀑圖)」[간송미술문화재단] 등이 전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논문

이승용, 「이광사의 학문 경향과 지식수용 방식에 대하여: 『원교집선』 수록 잡저‧잡문을 중심으로」(『동양고전연구』 92, 동양고전학회, 2023)
장지훈, 「원교 이광사의 심학적 서예미학사상에 관한 소고」(『양명학』 23, 한국양명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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