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圓嶠, 員嶠, 員喬) · 수북(壽北)이다. 소론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1755년(영조 31) 나주괘서사건(羅州掛書事件)에 큰아버지와 함께 연루되어 23년간 유배 생활을 하다 생을 마쳤다. 맏아들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쓴 이긍익(李肯翊)이고, 둘째 아들 이영익(李令翊)도 문학과 서예에 뛰어났다.
조선 양명학의 선구 정제두(鄭齊斗) 문하에서 수학하며 강화학파(江華學派)를 형성했다. 윤순(尹淳)에게는 서예를 배워 동국진체(東國眞體) 정착에 이바지했다. 또한 고법(古法)을 연마하여 원교체(圓嶠體)를 완성했으며, 서예사의 이론 체계 수립에도 기여했다.
전서, 예서, 해서, 초서에 두루 능했고, 서첩과 금석문, 편액 등의 묵적(墨跡)도 많이 전한다. 대표적인 서첩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교법첩(圓嶠法帖)』(1755)이 있고, 그 외 유배 시절의 글을 모은 『두남집(斗南集)』, 시문을 모은 『원교집선(圓嶠集選)』, 서예 이론서인 『원교서결(圓嶠書訣)』 등이 전한다.
그림은 산수, 인물, 초충을 그렸다. 「도원도(桃源圖)」[국립중앙박물관], 「고승완회도(高僧玩繪圖)」[1746, 간송미술문화재단], 「층장비폭도(層嶂飛瀑圖)」[간송미술문화재단]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