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예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화가.
개설
조선시대 양명학의 태두인 정제두(鄭齊斗)의 문인이며 정제두의 아우 제태(齊泰)의 사위이다. 그는 당시 조정과 산림에 있는 선비들의 허위와 타락을 논하면서 양심적 시정(施政)과 개혁을 주장하였다.
생애
1735년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 1739년 경기도관찰사를 지냈으며, 그 뒤 평안도관찰사로 관내를 순찰하던 중 벽동(碧潼)에서 객사하였다.
작품세계
또한, 김정희(金正喜)는 『완당집(阮堂集)』에서 “백하의 글씨는 문징명(文徵明)에서 나왔다."고 주장하였다. 이같이 그는 옛사람의 서풍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대가의 역량을 지녔다. 특히, 행서는 각가(各家)의 장점을 조화시켜 일가를 이루었다.
대표적 작품
참고문헌
- 『백하집(白下集)』
- 『한국(韓國)의 양명학(陽明學)』(유명종, 동화출판공사, 1983)
- 『한국(韓國)의 미(美) 6-서예(書藝)-』(임창순 감수, 중앙일보사, 1981)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 「백하(白河) 윤순(尹淳)과 중국서법(中國書法)」(이완우, 『미술사학연구』206,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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