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 높이 1.41m. 1781년(정조 5) 왕이 숙종의 명릉(明陵)을 참배하고 서울로 돌아오던 도중에 할아버지 영조의 옛일을 회상하면서 친히 비문을 짓고 쓴 비이다.
비문의 내용은 영조가 세제(世弟) 시절인 1721년(경종 원년)에 부왕의 탄신일(팔월 보름)을 맞이하여 명릉을 참배하고 귀환하던 도중 날이 어두워져 검암(黔巖)의 덕수천(德水川) 변에 잠시 머물었는데, 이곳 역사(驛舍)의 참장(站將)이던 이성신(李聖臣)이 소도둑을 잡았다가 도둑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를 타일러 보낸 일을 목격하고, 뒤에 왕위에 올라서도 이를 거울삼아 선정을 베풀었다는 것을 적은 것이다.
1781년 8월초에 비문을 짓고 써서 그 달 15일에 세웠다. 비는 네모받침돌 위에 비신(碑身)을 얹고 그 위에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얹는 일반 형식이다. 당시 이곳은 고양군 검암리로 의주(義州)로 향하는 역참으로 사용되던 곳인데, 현재 역사는 없어지고 하마비(下馬碑)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