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문(大井門)·토산량문(吐山良門)·습비문(習比門)·왕후제문(王后梯門)에서 거행되었다. 이들 성문은 신라의 왕경내에 있는 것이겠지만, 어느 성의 문이냐에 대해서는 왕이 거처하는 왕궁인 월성(月城)의 성문이라는 설과 왕경 전체를 둘러싼 나성(羅城)의 성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전자의 설은 습비문과 관련되는 습비부(習比部)가 왕궁 밖의 지역이라는 점에서, 또 후자의 설은 전체를 둘러싼 나성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사성문제의 제일(祭日)·절차 등에 대해서도 미상한 점이 많으나, 이를 거행한 이유는 수문신(守門神)을 제사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악령 등의 침입을 막고자 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또 고려와 신라의 국가제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중국 당나라에서 장마가 오래될 경우 국도의 성문에서 영제(榮祭)를 지냈던 점으로 미루어, 사성문제도 기청(祈晴)을 위한 제사였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