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內省)의 장관직으로 622년(진평왕 44)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585년(진평왕 7)에 대궁(大宮)·양궁(梁宮)·사량궁(沙梁宮)의 관청이 설치되었을 때 이미 장관직으로 설치된 일이 있었다. 759년(경덕왕 18)에 내성을 전중성(殿中省)으로 고쳤을 때 사신도 전중령(殿中令)으로 개칭되었으나, 776년(혜공왕 12)에 다시 본래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정원은 1인이며, 금하(衿荷) 이상 태대각간(太大角干)의 관등을 가진 사람으로써 임명하였다. 다만, 적당한 후보자가 있을 때만 임명하였고, 연한도 없었다고 한다. 신라통일기에 들어와서는 그 권한이 크게 확대, 강화되어 상대등(上大等)·병부령(兵部令) 등과 더불어 권력의 핵심적인 관직으로 부각되었으며, 재상(宰相)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