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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대신들이 모여 나라의 큰 일을 의논하던 네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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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시대 대신들이 모여 나라의 큰 일을 의논하던 네 장소.
내용

왕경인 경주의 동·서·남·북 주변에 각각 있었으니, 동쪽의 청송산(靑松山), 남쪽의 오지산(亏知山), 서쪽의 피전(皮田), 북쪽의 금강산(金剛山)이 바로 그것이다.

삼국통일 이전 진골출신의 고관들이 나라의 대사를 의논할 때면 반드시 이곳에 모여 의논하곤 하였는데, 그러면 일이 꼭 이루어졌다고 한다. 진덕여왕(647∼654) 때 알천공(閼川公)·임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호림공(虎林公)·염장공(廉長公)·유신공(庾信公, 김유신) 등 중신들이 남산 오지암에 모여 국사를 의논한 적이 있었다.

이 때 큰 범이 중신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뛰어들었는데, 여러 사람이 놀라 일어났으나 알천공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태연히 담소하면서 범의 꼬리를 잡고 땅에 쳐서 죽였다고 한다. 이처럼 알천공은 뚝심이 세어 수석의 자리에 있었으나(상대등 직을 가리키는 듯함), 여러 사람은 모두 김유신의 위엄에 복종하였다고 한다. 화백회의의 모습을 전해주는 생생한 기록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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