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온(司醞)의 ‘온’은 술을 빚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위와 거의 같은 일을 담당해온 관청이 있었는데, 이들 관청은 왕대에 따라 그 명칭이 여러 번 바뀌었다.
즉 양온서(良醞署)·장례서(掌醴署)·사온서(司醞署) 등으로 바뀐 것이 그것이다. 조선시대는 1392년(태조 1) 7월에 관제를 새로이 정할 때 사온서를 두어 주례(酒醴)의 일을 맡게 하였다. 소속관리로는 처음에는 영(令)·승(丞)·직장(直長)·부직장(副直長)을 두었으나, 1414년(태종 14) 관제개편 때 6품 서승(署丞)을 주부(注簿)로 고치고, 1446년 관제를 다시 개정함에 따라 부직장을 봉사(奉事)로 개칭하였다.
이로써 사온서의 직제는 완전히 정비되었으며, 이의 예속하에 주고(酒庫)도 마련되어 있었다. 정원은 영(정5품)·주부(종6품)·직장(정7품)·봉사(종8품) 각각 1인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체제가 조선 초기에 이루어졌다가 중종 때까지는 존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