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에서는 읍락의 거수(渠帥)들이 삼로를 자칭하였으며, 동예에서는 후(侯)·읍군(邑君)과 더불어 하호(下戶)를 통솔하는 읍락의 우두머리였다.
삼로는 원래 중국 진한시대(秦漢時代)의 향관(鄕官)으로 진은 향에 삼로를 두었으며, 한은 향 이외에 군과 현에도 삼로를 두었는데, 향민 중에서 유력자를 이에 선임하여 지방사회의 교화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삼로는 왕굉(王閎)이라는 인물이 서기 30년(後漢 光武帝 建武 6)경 낙랑군의 군삼로(郡三老)로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한사군 지역에도 두어졌던 것 같다.
따라서, 옥저·동예 읍락의 우두머리들을 삼로라고 칭한 것은 이들 지역이 30년까지 한의 군현으로 편입되어 있었던 만큼, 한군현시대의 유풍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