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상호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인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의미의 상업이 등장한 것이 극히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시전(市廛) 혹은 육의전(六矣廛)이라는 어용상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대부분이 관수용 물품에 대한 독점적인 공급이 위주였으므로, 자유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상행위가 이루어진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따라서 선전이나 광고를 목적으로 하는 상호(商號)도 없었다.
상품도 대부분이 일차적인 생산물로 곡물이나 인삼·해산물·가죽제품·지물 등이었기 때문에, 소비조장을 위한 별다른 광고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 밖에도 보부상(褓負商)이라는 등짐장수가 있었고, 상품보관과 중계를 위주로 하는 물산객주(物産客主)가 있었으나,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시키는 전근대적인 상업형태였기 때문에 선전광고를 목적으로 하는 상호는 없었다.
본격적인 상호의 등장은 삼포개항(三浦開港) 이후에 와서 보게 되는데, 1887년(고종 24)의 삼항구관초(三港口關草)에 의하면, 외국인에 의한 상호와 상점개설의 현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당시 인천항과 같은 개항장(開港場)에는 조선인도 종래의 객주와는 다른 새로운 상점을 개설하여 각기 상호를 쓰는 상회(商會)를 열었는데, 상품중계가 아닌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점이었다.
이 당시에 개설된 상점의 상호로는 대동상회(大同商會, 1883, 평양)·의신상사(義信商社, 1884, 京城)·태평상회(太平商會, 1885, 인천)·대흥상회(大興商會, 1886, 京城)·신창상회(信昌商會, 1886, 순창·담양)·대동상회(大同商會, 1886, 인천)·대안상회(大安商會, 1887, 천안)·괴흥상회(槐興商會, 1889, 괴산) 등이 있었다. 대체로 1883년을 전후해서 근대적인 상업이 일어나게 되어 독립된 상호를 사용한 상회나 상사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일제에 의하여 전매권·광산권 등이 독점되면서 전통적인 상권은 상실되고, 근대적인 산업형태로서의 상업의 등장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의 상호는 대체로 개성상회·평양상회·동래지물포·한양유기점 등과 같이 지명을 사용하는 의례적인 것으로 적극적인 명명(命名)의 의지는 볼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와서 상공업이 저들의 새로운 수탈의 수단으로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상업자본의 형성을 보게 되었고, 이에 따른 적극적인 점포의 개설과 상호의 명명을 보게 되었다.
예컨대,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일본어로 된 미나카이(三中井)·시세이도(資生堂) 등 자의적인 명명법이 점차 확산되었으며, 삼성상회(三星商會)·제일상회(第一商會)·현대상회(現代商會) 등을 비롯해서 동아(東亞)·국제(國際)·신세계(新世界) 등 포괄적인 상호의 등장을 보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호는 전통적인 지명을 바탕으로 한 것이 가장 많고, 현대감각을 반영하는 것도 많은데, 대부분이 한자어로 명명되어 있다.
그 밖에도 시대의 유행을 무시할 수 없는 양장점·양복점·양화점이나 미용소·양품점 등은 서구식 생활에 따른 상호가 생겨나고 때로는 의사(擬似) 외래어가 쓰이기도 하는데, 새롭고 기이한 느낌을 주어 구매력을 유발시키려는 광고술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진부한 한자어나 경박한 서구외래어에 대한 거부감에서 새로나백화점·고우니치과의원 등 고유어에 의한 상호가 등장하는 것도 새로운 감각을 지향하는 이 시대의 한 면모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