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誓幢)은 ‘서약(誓約)을 받은 군대’, 혹은 '새로운 부대'의 뜻으로 풀이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583년(진평왕 5)에 처음 조직되었고, 이후 613년(진평왕 35)에 그 이름이 녹금서당(綠衿誓幢)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만 이름이 바뀐 시기에 대해서는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672년(문무왕 12)에 백금서당(白衿誓幢)이 조직될 때까지는 서당이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이를 ‘녹금’을 붙여서 다른 서당과 구별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삼국사기』에 661년(문무왕 1)과 668년(문무왕 8) 각각 서당이라는 부대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 개명 시기는 672년(문무왕 12) 이후일 것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이 견해가 옳은 듯하다.
서당은 기존의 중앙군 조직인 6정(停)과는 달리 귀족 출신의 무장이 개인적으로 군대를 가려 뽑은 이른바 소모병(召募兵)의 성격을 띤 군대였다. 이후 서당은 삼국통일 직후인 신문왕 때 대폭 증가되어 9개의 서당으로 완성되었다. 9서당은 국왕에게 충성을 맹서한 왕의 직속부대로서 왕경(王京)의 방어 임무를 맡았으며, 신라 사람 이외에도 고구려·말갈·보덕국(報德國)·백제 등 피정복민들로 구성되었다. 이는 피정복민에 대한 신라 조정의 회유 또는 우대 정책의 하나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신라가 정복한 이민족의 포로들로 구성되었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천민군(賤民軍)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추측하는 견해도 있는데, 이것이 유력한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