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징하(任徵夏: 1687~1730)의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자는 성능(聖能), 호는 서재(西齋)이다. 1713년(숙종 39) 진사가 되어 이듬해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지평, 사간원정언 등을 지내다가 신임사화로 삭직당하였다. 1725년 상소를 올려 탕평책을 반대하고 소론을 제거할 것을 주장하다가 유배되었으며 1727년에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1729년 사헌부의 요청으로 다시 역모의 죄명으로 친국을 받을 때 끝까지 왕의 각성을 촉구하며 항거하다가 고문 끝에 옥사하였다.
저자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 임시구(任時九)가 저자의 유문을 수집하여 집에 보관해 두었고, 이후 저자의 5세손 임헌회가 홍직필의 산정을 받고 부록을 추가 재편하여 1844년 활자로 간행하였다.
권1~2는 시(詩) 258제(題)가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기별로 엮었는데, 초년록(初年錄)은 유배 이전에 지은 시이며, 서행록(西行錄)은 순안(順安)으로 유배되는 도중에, 안정록(安定錄)은 순안 유배 시기에 지은 시이다. 남천록(南遷錄)은 제주로 이배되는 도중에, 감산록(柑山錄)은 제주 유배 중에 지은 시이며, 영어록(囹圄錄)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의금부의 옥에서 지은 시이다. 서행록과 안정록에는 평안도 지역의 문인들과 어울리며 지은 시가 많다. 감산록의 「유일로기방문……(有一老妓來訪)」은 제주에서 만난 기녀가 부르는 김춘택(金春澤)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듣고 그 소감을 읊은 시다. 제주의 풍물을 기록한 「제주잡시(濟州雜詩)」 20수도 주목할 만하다.
권3은 소(疏) 13편이다. 과거 이진망(李眞望)에게 무고를 당한 조부 임홍망(任弘望), 종숙부 임창(任敞), 부친 임형(任泂)의 신원을 위해 올린 상소가 실려 있다. 신임사화를 일으킨 자들을 토죄하도록 청하는 상소도 보인다. 「진육조소(陳六條疏)」는 1726년 2월에 올린 상소로, 저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이 되었다. 성지(聖志)를 넓혀 대본(大本)을 세울 것, 궁금(宮禁)을 엄히 하여 간맹(奸萌)을 끊을 것, 천토(天討)를 시행하여 국시(國是)를 정할 것, 속론(俗論)을 깨뜨리고 실정(實政)을 행할 것, 사치를 억제하여 국용(國用)을 늘릴 것, 수령(守令)을 가려 백성을 보호할 것 등 6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말에 수록된 4편의 상소는 부친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권4는 소(疏) 4편, 계(啓) 4편, 공장(供狀)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는 신임사화를 일으킨 소론 인사들의 책임을 묻고, 실추된 노론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목적에서 올린 것이 대부분이다. 공장은 1728년 3월 18일 의금부에서 구술한 공초(供招)로, 만언소의 본지와 자신의 의도를 해명하는 글이다.
권5는 서(書) 41편, 기(記) 1편, 잡저(雜著) 4편이다. 서는 유배된 이후에 백부(伯父) 임호(任澔), 백형(伯兄) 임광하(任光夏) 등에게 보낸 것으로, 죽음을 앞두고 의연한 자세를 지키며 사후의 일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기의 「만송재기(萬松齋記)」는 저자가 순안에 유배되었을 때 가까이 지낸 한석유(韓錫愈)에게 지어 준 글로, 재실 이름을 반송재(伴松齋)에서 만송재(萬松齋)로 바꾼 경위를 밝히는 내용이다. 잡저의 「기묘록총론(己卯錄總論)」은 저자의 부친 임형이 연루된 과옥(科獄)의 실상을 밝히는 책의 요점을 간추린 글이다. 「의례문목(疑禮問目)」은 상례(喪禮)에 대한 8조목의 질문으로, 습렴(襲斂), 상식(上食), 대상(大祥) 등에 관한 내용이다. 「아산향교답태학문(牙山鄕校答太學文)」은 홍흡(洪㒆), 김중려(金重呂) 등의 죄상을 밝히고 이들의 처벌을 청하는 글로, 이들은 희빈 장씨와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한 임창을 참형에 처하도록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평양태학유열읍유생문(平壤太學諭列邑儒生文)」은 평안도 유생들에게 조태구, 유봉휘를 비롯한 소론 인사들의 역모를 알리고 이들을 성토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권6은 잡저 1편, 제문(祭文) 9편, 고문(告文) 3편, 애사(哀辭) 1편이다. 「수해록(隨鴈祿)」은 저자가 순안에서 대정(大靜)으로 이배되던 1727년 7월 5일부터 8월 23일까지의 일기이다. 제문은 이택문(李澤文)의 치제문(賜祭文), 종숙부(從叔父) 임선(任敾), 처남 김보택(金普澤), 처사촌 김경옹(金景雍) 등을 애도하는 글이다. 애사는 부친의 벗 한영휘(韓永徽)를 애도하는 글이다.
권7은 묘지(墓誌) 1편, 묘표(墓表) 1편, 행록(行錄)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지는 조부 임홍망의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 덧붙인 글이며, 묘표는 부친 임형에 대한 것이다. 이 두 편의 글은 1728년 구술한 것이다. 행록은 조부 임홍망에 대한 것이다.
권8은 부록이다. 연보(年譜)는 저자의 아들 임시구가 편찬한 것으로, 1776년 이후의 내용은 5세손 임헌회가 보충하였다. 1840년 홍직필이 지은 행장(行狀), 같은 해 김매순(金邁淳)이 지은 가장(家狀)의 발(跋)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