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우참찬,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영조가 즉위하고 소론(少論)이 몰락하면서 1725년(영조 1)에 풀려나 다시 등용되어 홍문관의 수찬(修撰)·교리,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등을 역임하고, 1727년에 흥원현감이 되었다. 그 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홍문관부응교(弘文館副應敎)를 거쳐 대사간·동지의금부사·대사헌·예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1735년에 진주 겸 사은부사(陳奏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37년 예조참판·대사헌, 이듬해 경기관찰사, 1739년 부제학·이조참판, 1741년 한성부판윤·홍문관제학·호조판서를 거쳐 예조판서가 되어 이광좌(李光佐)를 노덕원(老德院)에 제향하는 데 반대하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 일시 사직하였다.
그 뒤 형조판서·우참찬·우부빈객·충청도관찰사·좌참찬·예조판서·공조판서·개성유수·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고, 1757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저서로는 『퇴헌유고(退軒遺稿)』가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뇌연집(雷淵集)』
- 『퇴헌유고(退軒遺稿)』
-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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