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은 파진찬(波珍飡, 일명 海干)에까지 올랐는데, 그의 딸이 뒤에 문무왕이 된 김법민(金法敏)에게 시집가서 자의왕후(慈儀王后)가 되어 신문왕(神文王)을 낳았다.
그런데 『삼국유사』 후백제 견훤조에 인용되어 있는 『이제가기(李磾家記)』에 의하면, 그는 진흥왕의 셋째아들인 구륜공(仇輪公)의 아들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각간(角干) 작진(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맞아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를 낳았다고 하나, 이는 사실로 생각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