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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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일본에 파견된 사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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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일본에 파견된 사신.
내용

그의 가계는 잉피공(仍皮公)-담날(談捺)-원효(元曉)-설총(薛聰)-설중업(薛仲業)으로 이어진다.

『삼국사기』설총전에 “일본국 진인(眞人)이 「증신라사설판관시(贈新羅使薛判官詩)」를 지어 주었는데 그 서(序)에 ‘일찍이 원효거사(元曉居士)가 지은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을 보고 그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을 깊이 한(恨)하였는데, 신라국사(新羅國使) 설(薛)이 곧 거사의 포손(抱孫)임을 듣고 비록 그 조(祖)를 보지 못하였으나 그 손(孫)을 만난 것을 기뻐하여 이에 시를 지어준다.’고 하였다.

그 시가 지금도 남아 있으나, 다만 그 자손의 이름만은 알지 못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선사서당화상탑비(高仙寺誓幢和尙塔碑)」에는 “대력(大曆 : 唐代宗의 연호. 766∼779) 봄에 대사의 손자 한림(翰林) 자(字) 중업(仲業)이 바다를 건너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고 하였다.

또『속일본서기(續日本書紀)』에 의하면 780년(선덕왕 1) 정월에 일본에 사신으로 갔는데 대판관(大判官) 한나마(韓奈麻 : 大奈麻)로서, 일본의 광인왕(光仁王)으로부터 종5품하(從五品下)의 일본관직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속일본서기(續日本書紀)』
『조선금석총람』 상
「설중업(薛仲業)과 담해삼선(淡海三船)의 교환(交歡)」(이기동, 『역사학보』 134·135합집, 1992)
「원효(元曉)의 신분(身分)과 그의 활동」(活動)(전미희,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 63,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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